"시뻘건 불길에 겁이 덜컥"…'산불 영웅' 특수진화대원을 만났다

"시뻘건 불길에 겁이 덜컥"…'산불 영웅' 특수진화대원을 만났다

세종=정혁수 기자
2019.04.09 06:00

[인터뷰]동부지방산림청 특수진화대 임병천씨(53)…강원 고성·옥계서 '2박3일' 산불진화 '사투'

-2016년부터 특수진화대 멤버 활동 3년째 현장지켜

-일당 10만원이 전부…식비도 없고 주6일 상시대기

-'10달짜리 비정규직' 불구 "국민재산 지킨다" 자부

2016년부터 동부지방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병천씨는 "산불현장은 늘 어려움이 뒤따르지만 국민재산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현장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동부지방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병천씨는 "산불현장은 늘 어려움이 뒤따르지만 국민재산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현장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긴급/ 고성출동 대기하라"

초강력 산불이 발생한 지난 4일 저녁 8시56분. 강릉국유림관리사무소 초소에서 야간근무 중이던 임병천 씨(53·동부지방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와 팀 동료들에게 일제히 긴급 문자가 날아왔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큰 산불이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가뜩이나 오후부터 바람이 거세지면서 대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이날 야간조는 임 씨를 포함해 10 명이었다. 주간조(오전9시-오후6시)와 달리 이들은 오후1시에 나와 밤 9시까지 근무한다. 긴급 문자를 접한 팀원들은 장비를 챙겨 승합차와 1톤 짜리 산불방제(진화)차량을 나눠 타고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산불 현장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셌어요. 멀리서 봐도 산들이 빨갛게 달구어진 게 마치 용광로 같았습니다. 나름 산불현장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생각했는 데 겁이 덜컥 나더군요."

가는 도중 상황실에서 보내온 현장사진은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산은 시뻘겋게 타 올랐고 최대 초속 26m의 강풍을 타고 인근 주택가를 위협하고 있었다. 집에 남아있는 가족(부인과 딸3명)에게 "고성산불 출동. 현장 투입 대기 중이다"라는 짧은 문자를 남겼다. "너무 위험할 때는 조심해라. 함부로 접근하지 마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속초IC를 빠져나와 현장에 도착하니 상황은 이미 속수무책이었다. 현장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저 불길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라는 막연함이 머리를 스쳤다. 나름 '현장 지킴이'로 산불에 이력이 난 임씨였지만 그 순간 위기감이 엄습했다.

"산에 올라가 불길을 차단해야 했지만 접근자체가 허용되지 않았어요. 여태껏 현장에서 산불을 진압했지만 그런 장면은 처음 봤어요."

주변에서 진화작업을 하던 팀원들에게 상황실에서 다시 지시가 내려왔다. 인근 옥계지역에 산불이 번지고 있으니 그 지역으로 빨리 이동해 산불을 진화해 달라는 것이었다.

옥계지역은 동해와 강릉 경계에 있다. 불길이 거세 대원들도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출동한 소방차도 불길이 민간로 번지는 걸 막는 데 주력했다. 밤새 불길 확산을 저지하다 보니 어느 새 날이 샜다.

김밥과 빵으로 아침끼니를 때운 대원들은 오전 7시 산에 올라 진화작업에 나섰다. 그사이 산림청 헬기, 군병력, 소방대원 등과 함께 공동진화작업이 신속히 이뤄졌다.

임 씨 등 특수진화대 대원들이 상황실에서 긴급문자를 받고 출동한 지 꼬박 2박3일만에 강릉·고성·속초 산불은 완전히 진화됐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임 씨는 동부지방산림청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대원으로 10여년 근무하다 2016년 특수진화대로 소속을 옮겼다. 특수진화대는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지역에 투입되고 몸도 고되지만 일당이 10만원으로 곱절이나 많았다.

하지만 10개월짜리 비정규직 일자리는 그게 전부였다. 일당외에 야간 근무수당이 더해질 뿐 하루 8000~9000원 하는 식비(한끼당)는 고스란히 대원들 자부담이다. 식대만 한달에 20만원이 넘는다.

또 계약기간이 끝나 다시 근무하려면 매년 채용시험을 새로 봐야 한다. 체력시험과 면접 그리고 일반시험까지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체력시험은 5가지 종목에서 '과락'이 생기면 안된다. 만점 기준은 1분당 △팔굽혀펴기 55회 △윗몸 일으키기 70회 △100m 달리기 13초 이내 △오래달리기(1km) 4분 이내 △100m 모래주머니(30kg짜리)들고 달리기 15초 이내 등이다.

문재인정부 출범이후 일반사업장엔 '주5일근무'가 의무화 됐지만 이들은 특수재난영역 종사자여서 여전히 주6일 근무를 감수해야 한다. 쉬는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보통 비가오면 대원들끼리 2~3명씩 공백이 생기지 않게 교대로 쉰다.

임씨는 "대원들 모두 1년에 한번씩 똑같은 시험을 다시 봐야하니 시험철만 되면 스트레스가 많다. 체력적인 부담도 있지만 혹시 한 종목에서 과락이 생기면 탈락이다 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수진화대 대원들은 연간 평균 출동횟수가 30회를 웃돈다. 이번 처럼 대형 산불현장에 투입돼 2박3일씩 고생하고 나면 이후 1주일 정도는 몸져 눕는 경우가 많다. 화재현장 진화작업을 하고 나서는 체중 2~3kg씩 감소하는 게 다반사다.

임병천씨는 "바람이 거세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는 4~5월이 되면 산불발생 확률이 높아져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국민재산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현장에 임하고 있다"며 "일단 산불이 발생하면 대규모 재산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국민들께서도 산불예방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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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에서 농업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2013년부터 정부세종청사 농식품부를 출입하며 한국 농업정책과 농업현장의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농업분야에 천착해 오는 동안 '대통령표창'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한 것은 개인적으로 큰 기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신성장동력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농업의 무한변신'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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