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정유사에만 적용하고 주유소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정책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주유소들이 공급가 대비 과도하게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공급가 규제가 실제 판매가 인하로 이어질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12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석유제품 가격 안정화 방안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을 대상으로 한다. 주유소의 판매가는 지역별로 차이가 크고 주유소 경영전략이나 운영방식 등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져 일률적인 규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품별 최고가는 △보통휘발유 1724원(이하 리터당) △자동차용 경유 1713원 △실내 등유 1320원이다. 도서지역에 공급되는 석유제품의 최고액은 △보통휘발유 1743원 △자동차용 경유 1732원 △실내 등유 1339원이다. 해당 가격은 13일 오전 0시부터 적용된다. 국제유가와 가격안정 효과 등을 고려해 2주마다 최고가를 재조정한다.
최고가격제의 도입 배경이 시중 석유제품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었다는 점에서 공급가만을 규제하는 방식이 실제 판매가 인하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급등세를 보였다. 오피넷에 따르면 리터당 1600원 후반대를 유지했던 전국 보통휘발유 가격은 이달 2일 1702원으로 1700원대를 넘어선 이후 △3일 1723원 △4일 1777원 △5일 1834원 △6일 1872원 등으로 매일 40~50원씩 급등했다. 지난 10일에는 1907원으로 고점을 기록한 이후 현재 보합세를 유지 중이다.
의문점은 현재 주유소가 판매하는 석유제품 대부분이 국제유가 급등 이전에 도입한 물량인데 왜 가격은 실시간으로 급등하냐는 것이다. 주유소 업계에서는 국내 휘발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석유제품가격(MOPS)과 환율이 동시에 급등하면서 정유사들의 공급가도 급격하게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유사의 공급가격이 급등한 것은 사실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2월넷째주 리터당 평균 1616.2원이던 보통휘발유 공급가격은 이날 기준 1830원대로 2주만에 200원 이상 올랐다. 특히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첫째주에 급격히 오르면서 판매가격 불안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주유소 업계의 주장에도 판매가격의 급격한 상승 속도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통상 주유소들은 2~3주 간격으로 제품을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판매하는 제품은 2~3주전 공급가격이 기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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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공급가격은 2월 셋째주 1627.7원에서 넷째주에는 1616.2원으로 오히려 하락했지만 3월 첫째주 주유소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55.3원 오른 1746.5원이었다. 소비자들이 석유제품 가격에 대해 "오를땐 빠르게, 내릴땐 천천히"라고 느끼는 이유다.
경기 광주시의 한 알뜰주유소는 중동 사태 발발 이후 5일 동안 경유 가격을 850원 올렸다가 정부의 단속 분위기가 감지되자 하루만에 가격을 600원 내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주유소 판매가가 공급가와 상관 없는 '고무줄 가격'이라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고가격제로 인해 정유사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인해 석유판매업자의 손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는 이를 보전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분기 단위로 정산해 손실을 보전하기로 하면서 정유사들의 손실이 곧바로 복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정유사들이 손실액을 자체 산정해 정산을 요청하면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통해 손실액을 검증 후 정산한다는 계획이다. 분기 마감 이후에도 심사에 소요되는 기간 등을 감안하면 손실이 발생한 시점부터 최소 3개월 이상은 자체적으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최고가격제 해제 시점도 명확하지 않아 정유사, 주유소, 소비자 모두 혼란이 가중된다. 앞서 지난 13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고가격제를 해제할 수 있는 시중 가격 기준을 1800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중동정세, 국제유가, 수급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해제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