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기화 조짐·달러수급 불안 등 상승압력 요인 지목
에너지비용 상승 확산,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다시 고개
당국 "외환시장 쏠림 뚜렷하면 대응" 안정화 조치 염두
원/달러 환율이 31일 장중 1536.9원까지 급등하면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대한 우려는 물론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확대 등 달러수급 불안도 환율상승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고환율·고유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다시 고개를 든다.
최근 원/달러 환율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중동전쟁 장기화에 대한 우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발전소·유전·하르그섬 등 에너지시설의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고 이스라엘 역시 종전시점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확전 가능성이 시장에 반영됐다.
유가도 급등했다. 5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산중질유)는 배럴당 102.88달러로 마감하며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를 돌파했고 브렌트유 역시 112달러대에서 강세를 이어갔다.
고유가 장기화로 국내 경제 펀더멘털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도 원화약세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크게 낮추면서 에너지 가격상승 충격에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외국인들이 대거 국내주식을 매도하는 점도 환율에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은 3월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만 총 35조158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였던 전달 순매도액 21조730억원을 경신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달러수급 흐름은 여전히 원화가치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일단 외국인의 국내주식 순매도 흐름이 원/달러 환율에 부정적"이라며 "공격적인 주식 순매도가 아무래도 심리적이나 수급적으로 환율에 큰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급등이 이어질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도 커진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물가 상승압력을 높이고 기업의 원가부담을 확대한다. 고유가까지 겹치면 에너지비용 상승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며 경기둔화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장에선 중동사태 진정 여부가 환율안정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고유가가 진정되지 않는 한 환율하락을 기대하기 어렵고 확전으로 유가가 추가로 오르면 환율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환율급등이 곧바로 국내 경제위기나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윤경수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환율수준이 위기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달러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지 여부와 유동성이 더 중요한 요소"라며 "달러자금 조달·운용은 전혀 문제가 없고 유동성은 아주 좋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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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과 RIA(국내시장 복귀계좌) 등도 달러수급 여건 개선에 도움이 되는 요인이다. 반도체 수출실적 등 경상수지도 긍정적인 상황이다. 시장에선 WGBI 편입으로 500억~600억달러(약 70조~80조원) 수준의 자금유입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시장 안정화 조치도 염두에 두고 있다. 윤 국장은 "외환시장 수급 측면에서 외국인의 주식자금 유출이 많아 지켜보고 있다"며 "시장심리의 쏠림현상이 뚜렷해지고 다른 통화와 괴리가 심해지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