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정유사들이 수조원대 손실을 기록할 것이란 우려와 달리 1분기 역대급 실적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 급등에 따른 정제 마진 개선과 재고평가이익 상승 덕분이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로 인한 정유사 손실분을 세금으로 보전한다는 방침이지만 역대급 실적이 예고된 상황에서 과도한 세금 지원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면 정유사들은 올해 이익 발생이 일회성에 불과하다며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 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S-Oil·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합산은 약 5조원 초반대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1분기 4사 합산 영업이익(811억원) 대비 대폭 개선된 실적이다.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지난해 1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각각 2조원, 1조원대로 흑자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GS칼텍스는 약 1조9000억원, HD현대오일뱅크는 2000억원대 이익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휘발유, 경유 같은 석유제품 가격이 상승한 영향이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공급받아 이를 휘발유 등으로 정제한 뒤 판매해 수익을 낸다. 전쟁 이전에 저렴한 가격으로 도입한 원유를 정제해 제품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만큼 정제 마진이 개선된 것이다.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내수에서는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 하지만 정유사 매출의 대부분은 최고가격제가 적용되지 않는 수출과 산업용 물량으로 해당 부문에서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KB증권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의 수출 비중은 60~70%이며 내수 30~40% 중 최고가격제의 적용을 받는 휘발유·경유·등유 비중은 판매량의 15% 전후로 추산된다. 정부의 수급 안정 조치로 석유제품 수출 물량도 제한된 상황이지만 제품 가격 상승 덕분에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의 경우 수출 물량은 전년 대비 36% 감소했으나 수출액은 전년 대비 40% 증가한 51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중동전쟁의 장기화로 고유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국내 정유사들도 내년까지 장기 호황을 누릴 것이란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산유국이 아니지만 정유사의 정제 능력 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현재 중동, 아시아, 태평양, 아프리카 중 석유제품 수출이 가능한 정유사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2027년까지 슈퍼사이클 이익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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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들의 역대급 실적이 예상되면서 최고가격제로 인한 손실 보전 필요성에도 논란이 제기된다.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정부의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정유사 손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는 이를 보전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
지난 3월13일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휘발유와 경유의 주유소 공급가격은 리터당 1900원대로 묶였다. 정유사들은 최고가격제가 시행되지 않았을 경우 판매가격과의 차액 만큼을 손실로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현재까지 약 1조~3조원대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고유가에 따른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인 만큼 철저한 원가 계산을 근거로 손실을 보전한다는 계획이다. 정유사가 손실 청구서를 제시하더라도 그 액수를 전부 보상하진 않겠다는 의미다. 최근 유가 흐름이 안정화하면서 정유사들의 내수 손실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요소다.
다만 정유사들은 올해 이익 개선이 재고평가이익으로 인한 착시현상인 만큼 정부의 손실 보전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재고평가이익은 장부상 이익이지 실제 현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대로 유가가 하락할 경우에는 역래깅 효과(원재료 투입 시차로 손실이 발생하는 것)가 나타나면서 다시 적자로 전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