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7선 농민대표 vs 30년 농정관료…낙농 해법 놓고 마주 선 두 거인

[농담] 7선 농민대표 vs 30년 농정관료…낙농 해법 놓고 마주 선 두 거인

세종=정혁수 기자
2026.09.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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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 2004년 첫 취임 이후 7번째 임기…생산자단체 '산증인'
-김경규 낙농진흥회장, 농식품부 기획조정실장·농촌진흥청장 거친 정통 농정관료
-용도별 차등가격제·원유 물량 놓고 큰 시각차…두 사람의 선택에 낙농업계 시선

[편집자주]  농업의 큰 변화는 때로 아주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한 그릇의 밥, 한 알의 씨앗, 농부의 한마디, 연구자의 오랜 기다림 속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농업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농담(農談)'은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 사람과 농업, 정책과 삶을 잇는 공간입니다. 작은 농업의 이야기를 담아, 더 큰 농업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과 30년 농정 경험을 지닌 김경규 낙농진흥회장이 원유 수급과 낙농제도의 미래를 놓고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과 30년 농정 경험을 지닌 김경규 낙농진흥회장이 원유 수급과 낙농제도의 미래를 놓고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한 사람은 목장에서 소를 키웠고, 한 사람은 정부청사에서 농정(農政)을 만들었다.

한 사람은 평생 생산자의 편에서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한 사람은 공직자로서 생산자와 산업, 소비자 사이에서 정책의 균형점을 찾아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이제 한국 낙농산업의 가장 뜨거운 현장에서 마주 섰다. 이승호(67) 한국낙농육우협회장과 김경규(63) 낙농진흥회장이다.

그동안 한국 농업계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낯설었던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문제를 놓고 존재감을 드러낸 적도 흔치 않다.

먼저 링에 올라 있던 사람은 이승호 회장이다.

1960년생인 이 회장은 경기 여주에서 순덕목장을 경영해온 낙농인이다. 2004년 제12대 한국낙농육우협회장에 처음 선출된 뒤 13·14대를 연이어 맡았고, 3년간 자리를 비운 뒤 2016년 제16대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17·18대를 거쳐 지난해 제19대 회장에 다시 무투표 당선됐다. 현재 임기는 2028년 2월까지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일곱 차례 협회장을 맡았다.

낙농육우협회장만이 아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을 여러 차례 맡았고 현재 한국농축산연합회장도 겸하고 있다. 농축산연합회장 역시 지난해 연임됐다. 생산자단체 진영에서 이 회장이 갖는 무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한 방향을 향해 있다. '현장을 정책에 반영하라'는 것이다.

2016년 협회장으로 복귀할 당시에도 이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책은 산업을 후퇴시킨다"며 생산자 중심의 낙농제도 개편을 강조했다. 같은 해에는 정부의 우유 수급정책을 '갈지(之)자' 행보에 빗대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같은 링 맞은편에 올해 3월 김경규 회장이 등장했다.

1964년생인 김 회장은 이 회장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30회로 1987년 공직에 입문했다.

농식품부 축산정책과장과 농업구조정책과장, 주미농무관, 식량정책관, 식품산업정책관, 식품산업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2018년 농촌진흥청장에 올랐다. 농업정책의 여러 영역을 30년 넘게 두루 경험한 정통 농정관료다.

지난 3월1일 제10대 낙농진흥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이 밝힌 첫 화두는 '상생'이었다.

그는 취임하면서 "사료비 상승과 소비구조 변화 등으로 낙농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동안의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낙농가와 유업체 간 상생, 낙농제도의 안정적 정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불과 이틀 뒤 이승호 회장이 이끄는 낙농육우협회가 응답했다. 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먼저 축하부터 건넸다. 그러나 축하 뒤에 뒤따른 주문은 무거웠다.

협회는 김 회장 취임을 환영하면서도 "무너진 낙농정책의 신뢰를 복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파행을 지적하면서 제도 운영 주체인 낙농진흥회에 "엄중한 책임감"을 주문했다.

취임 사흘 만에 날아온 생산자단체의 첫 메시지였다. 두 사람의 승부가 시작됐다고 업계가 느낀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승호 회장의 등 뒤에는 낙농가가 있다. 농가의 소득과 생산기반을 지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책무다.

김경규 회장이 이끄는 낙농진흥회는 다르다. 생산자와 유업계 사이에서 원유의 수급과 물량, 가격을 조정해야 한다. 한쪽의 손만 들어줄 수 없는 자리다.

두 사람이 마주 선 테이블 위에는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놓여 있다.

정부는 흰우유 소비 감소와 치즈·버터 등 가공유제품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음용유와 가공유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고 2년마다 생산자와 유업계가 물량을 조정하는 구조다.

제도 도입 당시 음용유 195만톤, 가공유 10만톤이었던 물량은 2025~2026년 음용유 194만1000톤, 가공유 10만9000톤으로 조정됐다.

정부와 유업계에서는 소비 감소에 맞춰 생산구조도 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승호 회장을 비롯한 생산자 측의 시선은 다르다. 유업체가 이미 원유 구매량을 줄인 상황에서 제도상 물량까지 추가로 줄일 경우 농가는 사실상 '이중 감축'을 떠안게 된다는 주장이다.

협회는 제도 도입 때 약속했던 가공용 원유 확대와 유업체의 책임 있는 구매 장치 등이 충분히 이행되지 않았다고 비판해왔다.

올해 2027~2028년 원유 물량 협상에서는 이 같은 차이가 숫자로 드러났다. 유업계는 제도상 음용유 기준물량인 194만1000톤을 감축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생산자 측은 실제 구매량인 189만톤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맞섰다.

계산의 출발점이 달라지면서 최종 감축 규모도 최대 1만5000톤가량 차이가 났고, 협상은 당초 일정을 넘겨 8월 말까지 이어졌다.

숫자만 놓고 보면 5만1000톤의 기준 차이다.

하지만 이승호 회장에게 그 숫자는 농가의 우유대금이고 목장의 생존이다. 김경규 회장에게는 소비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풀어야 할 수급 방정식이다.

같은 숫자를 보고도 다른 답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모두 한국 농업의 '오래된 선수'라는 점이다.

이승호 회장은 생산자단체장으로 수많은 장관과 관료를 상대해왔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들이 바뀌어도 낙농 현장을 지켰다.

김경규 회장은 반대로 수많은 농민단체장과 협상하고 정책을 설계해온 관료였다. 정부 조직의 생리와 정책이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한 사람은 '현장의 힘'을 알고, 다른 한 사람은 '제도의 힘'을 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이 더욱 흥미롭다.

현장을 대표해 정부를 압박해온 '7선 생산자 대표'와 정부 안에서 30년 넘게 농정을 설계했던 '베테랑 정책가'가 이제 원유 물량과 낙농제도의 미래를 놓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승호가 이기고 김경규가 지는 것, 반대로 김경규가 이기고 이승호가 물러서는 것이 한국 낙농산업의 승리가 될 수는 없다.

흰우유 소비는 줄고 값싼 수입 유제품의 문은 더 넓어지고 있다. 생산비 부담에 목장을 떠나는 농가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벌여야 할 진짜 승부의 상대는 서로가 아니라 한국 낙농산업을 둘러싼 구조적 위기다.

수십년 동안 한 사람은 목장에서, 한 사람은 정부청사에서 한국 농업을 지켜봤다.

이제 두 사람이 같은 우유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낙농가는 앞으로도 계속 우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소비자는 기꺼이 그 우유를 선택할 것인가.

두 거인의 승부 결과는 누가 상대를 꺾느냐가 아니라, 그 질문에 어떤 답을 만들어내느냐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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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에서 농업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2013년부터 농식품부를 출입하며 한국 농업정책과 농업현장의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농업분야에 천착해 오는 동안 '대통령표창'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한 것은 개인적으로 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신성장동력산업으로 발전하는 '농업의 무한변신'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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