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낯설어서 더 좋은 이동욱 [인터뷰]

‘하얼빈’ 낯설어서 더 좋은 이동욱 [인터뷰]

한수진 ize 기자
2025.01.08 09:28
이동욱 / 사진=CJ ENM
이동욱 / 사진=CJ ENM

“극장에 가기 힘든 시기에 많이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나머지 감사 인사는 현빈이 할 겁니다(웃음).”

여유롭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주변 공기를 부드럽게 휘감을 줄 아는 이였다. 무심한 듯 유머가 스민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에게서 유쾌한 웃음을 끌어냈다.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질문과 동시에 쏜살같이 튀어나오는 대답은 솔직해서 귀가 쫑긋했다.

배우 이동욱은 오랜만에 주연의 책무를 내려놓고 특별 출연한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에서 역할에만 열중한 채 작품을 자유로이 항해했다. 철저한 연구보다 날것의 감각에 의존했다. 그렇게 완성한 이창섭이라는 인물로 '이동욱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이동욱은 '하얼빈'에서 쇠붙이 같은 외향으로 향긋한 꽃내음을 풍겼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현빈)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일본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를 저격한 사건을 영화화했다.

“우민호 감독님을 사적으로 뵐 기회가 있었어요. 와인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출연한 작품을 거의 다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몇 달 뒤에 ‘하얼빈’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감독님께서 ‘지금까지 대중에게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말하며 제안해 주셨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이창섭 캐릭터가 매력 있더라고요. 안중근과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방식이 달라서 좋았어요.”

이동욱 / 사진=CJ ENM
이동욱 / 사진=CJ ENM

이동욱이 극 중 연기한 이창섭은 대한의군 좌영으로, 신아산 전투 이후 일본군 포로를 살려둔 안중근에게 반감을 품은 인물이다. 창섭은 안중근이 적군의 기습 전투 이후 살아 돌아오자 그를 밀정으로 의심하면서도, 제 머리에 살의(殺意) 가득한 일본군의 총구가 겨눠져도 끝까지 안중근을 비호하는 인물이다.

“이창섭은 안중근과 적군을 대하는 방식의 대척점에 있어요. 지금까지 비치지 않았던 모습들이 제 캐릭터를 통해 드러나길 바랐어요. 사실 이창섭 같은 이들이 많았을 거로 생각해요. 나라의 독립 투쟁을 위해서 무력을 가해서라도 이겨야겠다는 마음이요. 이와 동시에 제 캐릭터를 통해서 안중근의 캐릭터가 돋보였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어요. 이창섭의 안중근에 대한 마음은 애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엔 완벽한 믿음이에요. 죽음 앞에서 모리(박훈)에게 ‘안중근은 너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결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믿음이죠. 친구로서의 우정, 생사를 함께한 전우 등이 복합적으로 깔린 관계라고 생각해요.”

이동욱은 이 작품에 임하며 부담감은 떨치고 책임감만을 껴안았다. 대중에게 오직 독립운동가의 노고만이 오롯하게 전해지길 바랐고, 그래서 이성적인 분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현실적 감각에 의존해 생동으로 인물을 빚었다.

“이런 캐릭터와 장르를 해보지 않아서 부담스러웠던 건 없었어요. 늘 도전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즐겨 해요. 다만 실제 역사잖아요. 굉장히 소중한 역사고요.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이 오롯이 잘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죠. 사전에 캐릭터 분석을 섬세하게 준비하지는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읽으면 영화의 무드가 느껴지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고자 했고, 상세한 준비보다는 이 영화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해내자는 생각이 제일 컸죠. 그 다음으로는 이창섭은 자신이 정한 길이 있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사람이라는 설정 정도만 염두에 두고 연기했어요.”

이동욱 / 사진=CJ ENM
이동욱 / 사진=CJ ENM

이동욱과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분투할수록, 그 사이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동욱은 해외 로케이션이 많았던 ‘하얼빈’에서 촬영을 먼저 끝내고 돌아가려 했을 때 “그 사람들을 남겨두고 오는데 신경이 쓰였다”라며 남달리 각별했던 동료애를 이야기했다.

“촬영 안 하고 있을 때도 평상시 서로에게 ‘김 동지’, ‘이 동지’ 부르면서 지냈어요. 아무래도 로케이션도 많고 붙어있는 시간도 길었다 보니 마음을 금방 나누게 됐죠. 또 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다 본의 아니게 사적인 자리에서 제가 리드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촬영을 먼저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조우진 형이 저한테 ‘일주일만 더 있다가 가면 안되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정이 많이 들었죠. 그 사람들을 남겨두고 오는데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래도 갈 사람은 가야 되니까 가긴 했죠(웃음).”

이동욱은 26년이나 연기했지만 여전히 연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을 수 있었다. ‘하얼빈’에서 그가 새로운 얼굴을 내놓을 수 있던 것도 어려웠기에 배역과 작품에 골몰하며 확장할 수 있었던 저변이었다.

“연기는 할수록 어렵고 갈수록 책임감이 커져요. 이제는 연기를 안 하고 산 날보다 하고 산 날이 더 많아요. 그러면 연기가 더 쉬워질 법도 한데 왜 이렇게 할 때마다 어렵고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변하지 않는 신념이 있다면 ‘함께하는 사람들을 창피하게 만들지 말자’라는 거요. 연기라는 건 계속해서 발전하고 새로운 것들의 도전이잖아요. 당연히 중압감도 커지죠. 과거의 영광은 그곳에 두고 나아가기 위한 현재를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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