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위주 에로영화 NO!...시대의 부조리와 모순 고발

“세상은 여전히 엿 같고 우리는 매일 엿을 먹는다.”
이 한 줄로 ‘애마’는 과거를 재현하는 시대극에서 그 시절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조리와 여전한 모순을 정조준하는 풍자극으로 정체성을 가져간다.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에로영화’라는 포장지로 유혹하지만, 그 속내는 권력과 검열의 위압 속에서 약자들이 서로의 손을 잡는 연대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는 1980년대 시대를 풍미한 성애영화 ‘애마부인’의 제작 비화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1980년대 초 충무로의 분위기, ‘보여주되, 보이지 않게’, 은근함을 강요하면서 창작의 자유를 용납치 않던 검열의 시대를 재구성했다. 바야흐로 80년대의 시작을 앞두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기대하던 충무로의 들뜬 분위기 속에 ‘3S(스크린·섹스·스포츠)’는 쏟아지듯 성애물을 내놨다. 88 서울올림픽의 개최지로 확정되는 결정적인 사건과 통행금지의 해제를 필두로 자유와 변화의 기대감이 한껏 피어올랐다.

영화에서의 성표현은 허용되듯 금지되었고, 금지되듯 허용되면서 그 모순은 장르의 호황을 낳았다. 애마는 그 비틀린 구조와 어둡던 시대를 코믹한 분위기 속에 녹여낸다.
이 드라마의 가장 영리한 수법은 ‘야함’으로 유혹해 ‘야만’을 폭로하는 데 있다. 에로영화의 대명사를 차용해 그 시절 은근하고 뇌쇄적인 포스터처럼 호기심을 끌어모은다. 그러나 가볍게 들여다 본 포장 안에는 검열, 계약과 착취, 부패한 권력을 비꼬고 있다. 노련한 톱스타 정희란(이하늬)과 패기의 신인 신주애(방효린)의 창과 방패같은 대결구도로 재기발랄하게 문을 연 ‘애마’는 사회적 모순과 화려함 속에 가려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어두운 민낯을 비판한다. 불평등과 착취가 만연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냉혹한 진실을 한 편의 영화가 제작되기까지의 다양한 이야기들로 풀어낸다.

여기서 실존의 그 영화, 1982년 ‘애마부인’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시 31만 관객을 모으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오른 ‘애마부인’은 검열과 보수적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이 원하던 파격과 수위가 어떤 것인지 짐작케 한다. 시리즈는 13편까지 번식하며 한국형 프랜차이즈의 원형 중 하나가 됐다. ‘보려는’ 욕망과 ‘보여주지 말라’는 검열이 정면 충돌하며 뜨거운 기록과 이슈를 낳던 바로 그 시대의 바로미터인 셈이다.
‘애마’는 그 역사적 레퍼런스를 ‘복원’하지 않고 영리하게 ‘역이용’한다. 벗기는 카메라를 뒤집어 카메라 바깥을 겨냥한다. 배우의 ‘노출’을 흥행의 연료로만 쓰지 않고, 누가 왜 벗기려 하는지, 그 강요로 무너지는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상실과 굴욕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피식거리며 웃다가 불쾌해지는, 이윽고 묵직해지는 감정의 핑퐁이 내내 팽팽하게 이어진다.

다양한 감정들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인 ‘정희란’ 캐릭터가 보여주는 다각도의 변화는 이하늬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톱스타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며 살았던 희란은 영악하고 노련하면서 아름답고 품위있는 인물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적당히 호감가는 가면을 쓴 여배우 ‘희란’은 이하늬의 능청스러움과 늘씬한 자태, 카리스마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방효린은 ‘초짜’의 날것을 앞세워, 호락호락하지 않은 신인배우로 ‘애마’가 내고자 하는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당돌하고 순수한, 물들지 않은 백지상태로 충무로에 들어와 만연한 부조리와 착취, 부패에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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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같은 건 없어”라는 체념은 현시대와도 치환된다. 그 지점에서 ‘애마’는 80년대를 가로질러 2025년에도 소구하는 이야기다. 에로의 간판을 보고 이끌려 들어간 곳에는 두 여배우의 연대와 여배우의 몸이 아닌 시대를 벗겨낸 통쾌한 고발극이 있다.
정명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