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 생각 안 하고 만든 영화 '얼굴', 박스오피스 1위
"성취 집착하는 내 모습서 이야기 출발"
"게으르기 때문에 부지런한 타입"

연상호 감독은 영화 '얼굴'을 두고 "내 안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했다. 천만 영화 '부산행'(2016) 이전부터 구상한 작품이지만 투자와 제작의 문턱에서 번번이 가로막혀 이제야 꺼내 들 수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다시 꺼내 영화화한 건 오히려 지금 이 시대와 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본을 썼을 때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어요. '이런 이야기를 내가 썼구나' 싶었죠. 그런데 막상 투자를 받으려 하니 반응이 애매하더라고요. 영화엔 적합하지 않나 보다 싶었고, 그래서 그래픽 노블로 먼저 만들었어요. 한동안은 영상화를 포기했죠. 그러다 딸이랑 유튜브를 보는데 저렇게 적은 예산으로 재미있는 걸 만드는 걸 보면서 창작자로서 위기감이 오더라고요. '이러다 나는 경쟁력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러던 찰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데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 '얼굴'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어요. 결국 투자받지 말고 저예산으로 직접 만들어보자 해서 만들게 됐죠."
'얼굴'의 제작비는 약 2억 원 규모다. 한국 영화 제작비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규모지만, 연상호 감독은 오히려 그 제약을 기회로 전환했다. 그는 "넓고 좁음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밀도 있게 포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때문에 시대적 배경을 화려하게 복원하는 대신 압축된 공간과 디테일 속에서 밀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얼굴'을 만들었다.
"시대를 어떻게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영화를 보게 됐는데 딱 한 골목에서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루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얼굴'의 예산은 2억 원 정도 들었는데 제작사 내부에서 충당하는 원칙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키 스태프와 배우들의 인건비를 지분으로 나눠 가졌어요. 나중에 수익이 나면 그대로 나누는 구조죠. 100만 관객이 넘는다면 축제죠."

연상호 감독은 작품의 출발점이 "성취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라고 고백했다. 작품의 주인공 임영규는 바로 그 집착의 상징이자 감독 자신의 내면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사이비'나 '돼지의 왕'에서 보여준 방식처럼 자기 내면의 뒤틀림을 정면으로 꺼내놓는 작업을 '얼굴'에서도 취했다.
"임영규라는 인물은 제 안에서 나온 캐릭터예요. 성취에 집착하는 제 모습이 출발점이었죠. 쓰면서도 복잡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 안에 있는 뒤틀린 걸 꺼내는 느낌이었죠. 그동안은 대중성을 의식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영하려 했는데 이번에는 '내 성향을 그냥 보여주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관객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내 안에 대중성이 있나?' 싶을 정도였어요(웃음)."
연상호 감독은 배우 박정민이 제안한 1인 2역 설정에 대해 "영화적으로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했다. 원작을 읽은 박정민이 먼저 제안했고, 감독은 주제와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얼굴을 한 듯 이어지는 설정은 영화의 정서를 밀도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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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단절 문제를 한 배우가 소화한다는 게 주제와도 잘 맞았어요. 사실 처음엔 걱정했죠. 권해효 선배와 박정민이 워낙 유명하니까 몰입이 방해될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일치율이 엄청 좋더라고요. 박정민 배우가 주제를 정확히 간파한 덕분이었어요."

'얼굴'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설정은 '괴물처럼 못생긴' 인물로 나오는 정영희(신현빈)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현빈이 맡은 정영희는 목소리와 몸짓만으로 존재하지만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인물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 인물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불편한 정의'의 상징으로 설계했다.
"캐릭터 구축에 관해 신현빈과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어요. 그런데 배우가 먼저 '얼굴 때문이 아니라 어눌한 말투 때문에 멸시를 당했을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줬죠.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도 손동작이나 말투의 변화를 통해 인물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제가 바랐던 건 정영희가 '불편한 정의'로 남는 거였어요. 모든 정의가 존중받는 건 아니잖아요. 편견으로 동력을 얻는 사람도 있는 거죠. 그 모순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개봉 직후 '얼굴'은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고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관객 수가 점차 늘고 있다. 개봉 초반의 반짝 흥행이 아니라 작품성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면서 장기 흥행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정말 좋죠. 제 경험상 첫날만 오르고 내려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얼굴'은 현장에서 직접 표를 사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예매율은 높지 않은데 관객 수가 늘어난 거예요. 이건 입소문이 돌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극장에 와서 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중성을 속단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연상호 감독은 올해 '얼굴' 이전에도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을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시리즈 '지옥2'와 '기생수: 더 그레이'의 연출·각본, '선산'의 각본까지 맡으며 쉼 없이 작업을 이어왔다. 열심히 일하는 동력에 대해 그는 "게으르기 때문에 부지런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썼다.
"저는 한 번 쉬면 영영 못 일어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강박처럼 신호를 만들어요. 1년에 한 번은 꼭 책을 낸다, 이렇게요. 습관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게으르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지런하게 만드는 겁니다. 일을 정말 하기 싫어해서 다른 사람처럼 쉬면 영원히 쉬어요(웃음)."
'얼굴'은 연상호 감독 자신의 내면에서 출발해 한국 근현대사의 그림자를 정밀하게 파헤치며 많은 생각을 남기는 작품이다. 성취와 희생, 아름다움과 추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임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