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대중음악 시장에서 보아와 동방신기의 인기는 현지 제이팝 아티스트들의 존재감을 압도했다. 지금의 케이팝 아성을 있게 한 2000년대 'SM K-POP'의 아성은 그만큼 독보적이었다. 이 글의 주인공을 디자인 한 김재중은 저 동방신기 출신의 제작자, 정확히는 연예기획사 인코드(iNKODE 엔터테인먼트)의 CSO(최고 전략 책임자)다.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보이그룹 키빗업(KEYVITUP)은 그래서 아이돌 출신 제작자가 기획한 아이돌이라는 출생의 조건을 안고 가야 한다. 김재중의 입지는 회사 중역으로서 관리와 선배로서 조언을 모두 해야 하는 위치란 얘기다. 이는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전제일지 모른다. 직접 경험해 보았으므로 빠르고 효율적인 길을 아는 한편, 성공을 맛본 그 경험 안에 갇힌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게다가 케이팝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른 지 이미 오래지 않은가. 키빗업은 김재중의 야심과 용기가 동시에 필요했을 프로젝트다.
자신들 아버지가 K-POP 아이돌계에 나름의 획을 그은 유명인이라는 사실은 키빗업 멤버들에게도 자신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겨줄 만하다. ‘김재중 아이돌’이라는 꼬리표는 그들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에 색안경을 씌울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리더 현민의 말처럼, 그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그룹이 더 노력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건 시작부터 달게 된 ‘꼬리표’의 긍정적인 면이다. 제작자 명성에 따른 대중의 주목이란 부담감을 팀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 활용하리라는 것이다. 다섯 곡을 담은 데뷔 EP를 들어보고 두 곡의 뮤직비디오를 모두 감상해 본바, 이들의 미래는 과연 위축보단 팽창으로 뻗어갈 듯 보인다. 그만큼 팀 색깔이 확실하고 자신들 음악에 대한 확신도 짙다.
키빗업은 다국적 멤버로 짜인 5인조다. 스스로가 아직 현역인 김재중에겐 제2의 고향일 일본에서 두 명(세나, 루키아)을 데려왔고 한국인 멤버 세 명(현민, 태환, 재인)이 거기에 함께 했다. 과거 동방신기 완전체 라인업을 연상케 하는 라인업에다 멤버들 평균 나이도 십 대 후반이어서 표면 상 여러모로 먼 선배 그룹과 비교가 불가피한 느낌이다. 키빗업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KEY’와 ‘VITAL’, ‘UP’의 합성어다. ‘KEY’와 ‘VITAL’은 뜻 그대로 열쇠와 생명력을, ‘UP’도 단어의 기본 의미인 상승을 뜻한다. 요컨대 음악이라는 열쇠로 세상의 문을 열어 자신들의 생명력을 전하겠다는 게 팀 이름이 가진 포부다. 소속사에선 ‘WAY’라는 말을 더해 팀명이 지닌 더 깊은 뜻을 더 전하고 있는데, 여기서 ‘KEY’는 단순한 열쇠를 넘어 스스로에 대한 이해 및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확신을 뜻하고, 생명력(VITAL)은 멤버 간 연결과 시너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가리킨다. 그룹 이름의 이른바 ‘키 콘셉트’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WAY’로, 이는 주어진 길을 벗어나 팀이 직접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주도적인 방향을 얘기한다. 대부분 일찍 사라지는 아이돌 그룹들의 급소가 ‘주체성의 실종’인 만큼, 이 마지막 콘셉트는 특히 중요해 보인다.
댄스와 힙합 유전자를 모두 지닌 앨범 전반의 비트감에 비추어 볼 때 ‘키비럽’이라고 읽는 그룹 이름은 ‘Keep Beat Up’으로 들릴 여지도 있지만, 이들의 비트는 다소 침착하다는 데서 후자의 의미 확장은 한계를 띤다. 그렇다. 키빗업의 비트는 들뜨지 않으면서 적당히 신나는 분위기를 앨범 내내 유지한다. 과도한 허세도, 지나친 도취도 여기엔 없다. 대신 이들 음악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베이스다. 그것도 1990~2000년대 학교 뒷골목을 묘사하곤 했던 그 어두운 울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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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우직한 키빗업 음악 스타일은 첫 두 곡 ‘BEST ONE’과 ‘KEYVITUP’에서 벌써 확고하다. 지난해 공개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서 주인공 제이미 밀러의 아버지 에디가 운전 중에 ‘좋은 음악은 베이스가 살아 있는 음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내 맨다 밀러는 노르웨이 밴드 아하의 ‘Take on Me’가 그런 음악이라 했고, 딸 리사 밀러가 엄마를 위해 스마트폰으로 그 음악을 틀었다. 흥미롭게도 ‘아~하’라는 백코러스로 끝나는 키빗업 데뷔작의 첫 곡 ‘Best One’도 그런 “베이스가 살아 있는” 노래다. 노랫말에서든 스타일에서든 ‘Best One’ 속 초지일관 자신감의 바이브는 넘치지 않게, 그러면서 가득 찬 균형감을 갖추어 ‘노련한 신인’이라는 모순적인 인상을 남긴다. 이 점잖은 박력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Show Me Something'에서 더 발랄하게 전개된다.
키빗업은 이 EP가 자신들의 데뷔작임을 강조하기 위해 쓴 셀프 타이틀에 이어 타이틀 곡에까지 한 번 더 쓰며 그룹 이름을 거듭 각인시키고 있다. 키빗업의 ‘KEYVITUP’도 앞 트랙과 마찬가지로 베이스를 강조한 곡이다. 구체적으론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에서 시작해 H.O.T.의 ‘전사의 후예’로 이어진 어쿠스틱 베이스 리프다. 다음 트랙인 ‘LEGENDARY’가 2010~20년대 K-POP의 특징, 즉 미니멀한 텍스처에 반전하는 드롭 파트를 부분적으로 품고는 있지만 키빗업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20~30년 전 자신들의 제작자가 영향을 받았거나 직접 했던 성향을 뿌리로 삼고 간다. 일렉트로닉과 힙합, 알앤비를 둘러싼 과거와 현재의 교차. “자신만의 신념과 선택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란 결국 저러한 뉴트로 스타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내게는 읽혔다.
붐뱁이 대표하는 90년대 힙합 비트에 태환의 깨끗하고 신비로운 음색을 앞세운 보컬 라인까지. 키빗업의 음악과 퍼포먼스에선 BTS처럼 공격적인 랩 스킬을 전시하는 본격 힙합 아이돌보단, 랩 기능을 갖추었으되 가창력을 탑재한 보컬 그룹으로서 정체성에 더 무게를 둔 인상이다. 단순히 현민이 SM 연습생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거기에선 분명 동방신기를 배출한 SMP의 노하우도 엿보인다. 그 노하우는 록 기타가 안개처럼 스민 엔딩 발라드 곡 ‘POLAROID’에서 더 적극적으로 피어오른다. 김재중의 인코드가 눈부신 전례인 양현석의 YG처럼 될 수 있을지. 담담하게 시대를 융화시킨 키빗업의 음악에 비추어봤을 때 결코 불가능한 미래는 아닐 것 같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