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세라핌, 아일릿, 캣츠아이. 이 세 걸그룹은 한솥밥 식구다. 르세라핌은 쏘스뮤직, 아일릿은 빌리프랩, 캣츠아이는 하이브X게펜 레코드 소속이고, 이들 레이블의 모체가 바로 하이브다. 그리고 최근 이들 사이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생겼다. 바로 '테크노'다.
세 팀은 지난달 짧은 시간차를 두고 나란히 신보(곡)를 냈다. 4월 9일 캣츠아이의 '핑키 업(PINKY UP)'을 시작으로 24일 르세라핌의 '셀레브레이션(CELEBRATION)', 30일 아일릿의 '잇츠 미(It's Me)'가 차례로 베일을 벗었다. 그리고 한 지붕 아래서 세 팀은 약속이라도 한 듯 테크노 장르를 들고나왔다.
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테크노를 내놨을까? 한 지붕 식구이기에 오히려 획일적인 복제라는 우려의 시선이 생길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하이브가 최근 음악 시장의 흐름을 얼마나 민감하게 읽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이브는 국내 음악 엔터사 중에서 글로벌 트렌드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곳이다.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가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나 글로벌 스포티파이 차트에서 K팝 그룹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인기 아이돌 음악은 이중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10초 남짓의 숏폼 알고리즘 안에서 즉각적인 도파민을 터뜨려야 하는 동시에, 코첼라나 롤라팔루자 같은 대형 페스티벌에서 수만 명의 군중의 흥을 돋워야 한다.
테크노는 이 두 소비 환경을 관통하는 효율적인 장르다. 잘게 쪼개진 비트는 틱톡이나 릴스 위에서 강력한 밈(Meme)이 되고, 반복되는 4/4박 비트는 거대한 스피커를 거치며 관객에게 커다란 에너지를 준다. 짧게 잘라도 힘이 남고, 길게 이어 붙여도 에너지가 큰 장르다. 지금 K팝이 필요로 하는 순간의 중독성과 현장의 확장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장르가 바로 테크노인 셈이다.

이 장르의 핵심은 에너지다. 유럽 클럽 신에서 재부상한 하드 테크노는 170~180BPM에 달하는 속도와 거친 럼블 킥을 사용해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킨다. 하이브는 이 에너지가 무대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K팝의 특성과 완벽하게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미 지난해 블랙핑크가 하드 테크노 장르인 '뛰어(JUMP)'로 글로벌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이 장르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하이브는 이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사 아티스트들에게 이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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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캣츠아이, 르세라핌, 아일릿은 테크노라는 장르적 뼈대는 공유하되 각자의 팀 색에 맞춰 사운드의 분위기와 질감을 달리했다. 캣츠아이의 '핑키 업'이 글로벌 팝 시장의 클럽 에너지를 전면에 세운다면, 르세라핌의 '셀레브레이션'은 팀이 지닌 퍼포먼스 중심의 강점과 맞물린다. 아일릿의 '잇츠 미'는 상대적으로 밝고 감각적인 팀 컬러 안에 테크노의 질감을 녹여낸다. 같은 장르를 공유하지만 각 팀이 보여주는 분위기는 다르다.

덕분에 장르 중복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세 팀 모두 저마다 방식으로 흥행 궤도를 그리고 있다. 캣츠아이는 이 노래로 빌보드 메인 송 차트 '핫 100'에서 자체 최고 순위인 28위를 기록했고, 아일릿은 멜론 TOP100에서 최고 3위까지 올랐다. 앨범 역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자체 최고 순위인 26위에 자리했다. 르세라핌도 영국 오피셜 차트 두 개 부문에 랭크되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하이브 사옥 엘리베이터에서 각자 곡에 맞춰 세 팀이 함께 챌린지를 한 것도 이러한 차별화와 공존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나의 장르적 흐름 안에서 각기 다른 매력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했기에 가능했던 유쾌한 연대이자, 유사성의 우려를 시너지로 바꾼 영리한 윈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