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아성 뛰넘을까? 애플TV 시리즈로 재탄생
하비에 바르뎀, 로버트 드니로에 뒤지지 않는 압도적 연기
에이미 애덤스, 패트릭 윌슨, 줄리엣 루이스 총출동

불안으로 잠식 당한 가족의 균열. 존재만으로도 완벽했던 삶을 무너뜨리는 악몽같은 남자. ‘케이프 피어’는 가족들의 미세한 균열 사이를 파고드는 집요한 복수를 그린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케이프 피어(Cape Fear)'는 불안의 근원, 그리고 증폭되는 심리를 끈질기게 따라붙는 범죄물이다. 존 D. 맥도널드의 소설 '처형자들'이 원작인 작품으로, 1962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영화화됐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마틴 스코시지 감독이 연출한 1991년 버전. 국내에서도 꽤 흥행에 성공하며 로버트 드 니로의 서늘한 악역을 뇌리 깊숙이 각인시켰다.

이미 스릴러 장르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케이프 피어’를 다시 한번 각색한 이번 시리즈는 작품을 볼 대다수가 알고 있는 반전과 결말, 맥스 케이디라는 캐릭터의 익숙함이라는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 걸출한 원작과 앞선 영화들의 그림자를 짊어진 TV시리즈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케이디와 직접적인 원한관계를 가진 인물을 보든 부부, 두 사람으로 설정했다. 원작을 지나치게 비틀 경우, 산으로 간다는 비판과 함께 기존 팬들의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존 작품들을 답습한다면 새로운 창작물로서의 가치는 사라진다. 결말과 반전, 캐릭터가 소비된 작품의 리메이크라는 ‘양날의 검’을 들고 애플 TV의 ‘케이프 피어’는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한다.
원작을 뛰어넘을 리메이크가 될 것인지 거는 기대에는 캐스팅이 팔할을 차지한다. 세기의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맥스 케이디를 재해석할 배우로 하비에르 바르뎀의 이름이 공개됐을 때, 우려는 기대로 바뀐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위시한 바르뎀의 필모그래피에서 그가 보여준 존재감은 드니로의 아성에 도전할 만하다는 수긍의 마음을 품게 한다.

여기에 맥스 케이디와 대적하는 중심축은 에이미 아담스가 담당한다. 에이미 아담스가 맡은 ‘안나 보든’은 과거 임신 상태에서 맥스의 변호를 맡았다 사건 담당 검사였던 ‘톰’(패트릭 윌슨)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인물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가정사, 연인에 버림받은 미혼모 등 남들이 부러워하는 완벽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내면을 가진 ‘안나’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안나의 대학 동기이자 케이디 사건의 검사였던 톰 보든은 선과 악을 오가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패트릭 윌슨이 맡았다. 부와 명예를 좇는 성공한 변호사임에도 유년시절 형을 잃은 트라우마로 역시 취약한 내면을 가졌다. 두 사람은 자신의 과거와 맞서는 한편, 가정과 아이들을 지키고 맥스 케이디와 싸우는 상류층 부부로 분해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내고 있다.
장편영화를 시리즈로 리메이크한 이번 작품은 늘어난 분량만큼 다양한 스토리와 설정을 그린다. 보든 부부의 남매와 안나가 일하는 재단의 인물들, 케이디의 곁을 맴도는 정체불명의 여자, 그리고 남매의 마음을 파고드는 묘령의 소녀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반가운 얼굴은 91년작에 출연한 줄리엣 루이스다. 반항기 넘치는 사춘기 딸로 등장했던 줄리엣 루이스는 4화부터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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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파 배우들의 열연과 세련된 미쟝센, 변주된 스토리가 던져주는 호기심 등 ‘케이프피어’를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그 중에서도 서서히 보든 가족을 옥죄어 오는 심리적 긴장감이 압권. 기존 영화들이 맥스 케이디라는 악몽 같은 존재를 중심에 놓았다면, 이번 시리즈는 그가 침입하는 가족의 균열에 더 집중한다. 숨기고 싶었던 과거, 외면해온 죄책감, 가족 구성원 사이의 불신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긴장감을 만든다.
현대적인 심리 스릴러로 재탄생한 이번 작품의 중심에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있다. 바르뎀은 선배 배우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가 만들어낸 케이디는 괴물이라기보다 상처 입고 뒤틀린 인간에 가깝다. 위협적이고 잔혹하지만 동시에 매력적이고 영리한 남자다.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천천히 축적해나가며 맥스 케이디의 복수가 서서히 무르익는 과정을 숨막히게 그린다. 배우들의 연기와 긴장감 있는 대본, 그리고 서서히 조여오는 심리적 공포는, 앞선 영화들의 그림자를 지우기에 충분하다. 현재 공개된 4화까지 케이프피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복수의 시작에 앞서 느리지만 소름끼치게 공포를 채워나가고 있다.
정명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