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영업규제 14년, 위기의 대형마트(下)
④마트 떠나고 더 힘들어진 전통시장

"이마트가 있어서 시장에 손님이 안 온다는 건 옛날 얘기에요. 막상 없어지니까 사람이 더 안 와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성동구 지하철 성수역 인근 뚝도청춘시장.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시장과 약 300m, 도보 5분 거리에 있다가 2023년 문을 닫은 이마트 성수점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시장에서 20년 넘게 채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임모씨(75)는 "영동대교나 성수대교를 타고 강남권에서 자가용 갖고 이마트에 오던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끼리 이마트, 뚝섬한강공원에 갔다가 시장에도 자주 왔었는데 이젠 그런 사람들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상권 침체로 어려움을 겪은 상인들은 이마트가 다시 돌아오길 기대하고 있었다. 인근 국밥집에서 일하는 윤태연씨(65)는 "이마트에 왔다가 밥을 먹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다른 이마트가 있는 건대나 왕십리로 많이 빠져나간 거 같다. 몇 년 뒤에 마트가 다시 생긴다고 하던데 차라리 잘됐다"고 했다. 이마트 성수점은 2027년 같은 자리에 입점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이처럼 대형마트가 사라져도 시장 상권은 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침체한 모습이다. 실제 뚝도청춘시장도 이마트의 부재 속 전통시장의 강점을 내세워 식음료나 생필품을 팔기보단 식당과 주점이 더 많이 모인 상권에 가까웠다. 이날도 곱창집, 횟집, 술집 등 식당엔 사람들이 있었지만 잡화점이나 청과점엔 발길이 뜸했다. 한 의류 매장엔 '점포정리' 현수막이 붙어있었는데 하얗게 빛바랜 자국이 오랜 시간 공실 상태임을 짐작게 했다.
같은 날 방문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전통시장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인들이 꼽은 진짜 경쟁자는 쿠팡과 온라인 쇼핑이었다. 시장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김모씨(73)는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는 롯데마트 청량리점이 문을 닫는 수요일에 장사가 더 잘되냐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그는 "시장 사람들도 마트 가고 쿠팡 쓴다"며 "대형마트가 있어서 시장을 안 오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사면 바로 다음 날 오는 세상인데 시장에 굳이 올 필요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청과점을 운영하는 이영종씨(68)는 "우리 가게 단골은 여기서 과일을 자주 사 간다. 근데 다른 물건들은 마트에서 산다고 하더라. 각자 필요한 걸 원하는 곳에서 사는 세상"이라며 "마트가 문을 안 연다고 해도 매출은 별반 차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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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규제보다 방문 유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청량리역 인근에 추진하고 있는 한옥마을 조성 사업에도 기대를 거는 이유다. 김씨는 "한옥마을이 들어와서 외국인이나 한국인이 이 일대를 많이 찾게끔 만들어야 시장에도 자연스레 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씨도 "시장은 마트에 비해 깨끗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청량리 시장도 시설을 많이 개선했다"며 "일단 시장을 잘 만들어 놓고 꼭 살 게 없어도 시장에서 젊은 사람이든 어르신이든 놀고 구경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방문한 경기도 부천시 역곡상상시장. 시장 입구에서 걸어서 5분, 약 350m 남짓한 거리에 지난 4일 폐점한 홈플러스 부천소사점이 있다.
200개 이상의 점포를 보유한 대형 시장이지만 2005년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쇼핑뿐만 아니라 식사와 문화생활까지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면서 고객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상인들은 201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 시행, 최근 홈플러스 폐점 등으로 새로운 고객 유입의 기대감을 가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역곡상상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홈플러스가 한 달에 두 번 의무적으로 쉬기 시작했을 때는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며 "폐점 이후 손님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카드 사용이 일상화되고 소비문화가 바뀌면서 결국 홈플러스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다시 대형마트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마숙철 역곡상상시장 상인회 회장은 "홈플러스 폐점으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다"며 "홈플러스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인근의 다른 대형마트나 쇼핑몰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역곡상상시장은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편의시설, 아케이드 비가림막 등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배송센터를 조성해 고객에게 직접 상품을 배달하는 서비스도 시행했다. 그런데도 시장 활성화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상인들은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쿠팡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성장이 신규 고객 유입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마 회장은 "쿠팡은 새벽배송을 통해 소비자들이 집에서 편하게 장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며 "사람들이 시장으로 나오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더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상인은 "쿠팡에서 원재료를 구입해 판매하는 점포도 있다"고 귀띔했다.
역곡상상시장은 이커머스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기본적인 청결 상태 유지뿐만 아니라 AI(인공지능), SNS(소셜미디어) 활용 교육에도 힘을 쏟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마 회장은 "상인회 차원에서 시장의 질서와 청결을 강조하고 있다"며 "상품 진열 방식도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사례를 연구해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인대학에서 AI와 SNS를 활용한 홍보 방법을 배우고 있다"며 "젊은 상인들과 힘을 합쳐 새로운 경영 방식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⑤합리적인 제도 개선책은

정부와 여당은 지난 2월 고위당정청 협의에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을 개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에 쏠린 유통 환경 변화를 고려했다는 게 당정의 설명이었다. 지난해 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한 쿠팡이 수습 과정에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자 뒤늦게 '대항마'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부터 대형마트 규제 강화 정책을 이어왔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고 마트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다. 이 때문에 이번 규제 완화책이 실제로 대형마트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시작한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현재 쿠팡, 컬리 등 대형 이커머스는 밤 0시~오전 10시 영업 제한 없이 365일 쉬지 않고 새벽배송을 하고 있다. 반면 대형마트는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돼 이 시간에 온라인 주문 배송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쿠팡 독점이 심화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게 당정의 설명이다.
이번 결정은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편의성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최근 한국유통학회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1%가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도 영업규제 숨통을 틔워준 측면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전국 대형마트와 SSM(기업형슈퍼마켓) 점포가 약 1800개로 수도권과 지방 소도시까지 산재해서 새벽배송이 허용되면 물류 유통망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점포를 물류망으로 활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대형마트 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이커머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신규 설비투자, 인력 채용, 배송업체 추가 계약 등을 위해 상당한 비용을 더 써야한다"며 "상당 기간 손실을 감내하고 대규모 투자를 할 여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반발도 거세다.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가 알려진 직후 소상공인연합회,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공동 성명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이 조치의 금지를 촉구하는 헌법 소원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장과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 등 개혁진보 4당 의원, 소상공인 단체 회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대형마트 새벽배송 추진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2026.03.19. kkssmm99@newsis.com /사진=고승민](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6/2026062115021398095_7.jpg)
당정이 새벽배송 완화 추진에 앞서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의견을 수용해 오전 0시~4시 배송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업계에선 이번 정책 추진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형마트 업계에서도 새벽배송 허용보다 의무휴업일과 영업시간 규제 완화가 업황 개선 측면에서 훨씬 효과적이란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 허용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여는 의미는 있지만 실제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의무휴업 규제가 풀리면 기존 점포의 영업 효율을 높일 수 있어 효과가 훨씬 빠르고 수익성 회복에 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주말 매출이 평일보다 2~3배 높은 점포가 많다"며 "의무휴업일을 자율화하면 한 달에 3~4영업일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벽배송 확장보단 점포 근접성을 활용해 주문 1~2시간 이내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퀵커머스나 당일배송 등으로 수요처를 다변화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도 변화된 유통 사업 환경을 고려한 합리적인 제도 개선책을 주문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전통시장으로 갈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를 풀어 소비자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상권 유동 인구를 늘리면 전통시장도 들릴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질적으로 전통시장 상권을 살리려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보단 배달 경쟁력 강화, 지역화폐 확대 등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기 위한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