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TS가 그래미 어워드 출품 거부 의사를 밝히며 사실상 해당 시상식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들은 보이콧의 이유를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이는 누가 봐도 최근 그래미 측이 새로 만든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이하 'APMP')' 부문에 대한 저격이었다. 겉으론 무덤덤해 보이지만 사실 저 단출한 문장들에선 참을 만큼 참았다는 BTS의 분노가 느껴진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난 7년간 세 차례 후보 지명 등 BTS에게 플러팅만 날리던 그래미를 올해엔 기필코 손에 쥐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음악도 가사도 최대한 레코딩 아카데미 본토 회원들의 취향을 고려해 발표했건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그래미 측은 K-POP을 26년 전의 라틴팝처럼 서브 팝 범주에, 또 BTS를 시상식 시청률 확보를 위한 이벤트성 존재에 한정하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미상은 노미네이트 자체도 큰 의미를 갖지만 번번이 노미네이트에서만 만족해야 했던 저들이었기에, 이번 BTS의 결단은 차라리 절이 싫어 떠나려는 중의 체념을 닮은 듯도 했다.
그래미의 CEO 하비 메이슨 주니어는 즉시 입장문을 내놓았다. 그러나 2017년에 프랭크 오션이 출품을 포기한 이유(그래미의 낙후된 심사/시상 시스템과 문화/인종적 편향성)와 비슷한 이유로 행동에 나선 BTS를 납득시키기엔 다분히 원론적인 내용에 그친 입장문은 불난 집에 기름 끼얹듯 역효과만 내고 있는 분위기다. BTS를 낙담시킨 신설 부문에 관한 해명("아시아 음악의 깊이와 성장을 조명하기 위한 ‘확장’")은 적어도 BTS와 같은 아시아인과 아미들에겐 사안의 본질을 덮으려는 말속임수로 보였고, 해당 부문의 취지가 "차별이나 분리의 목적이 아닌 아시아 음악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도 신설 부문의 철회가 아닌 이상 BTS와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를 누그러뜨리기에는 너무 뻔한 논리로 읽혔다. 결정적으로 '아시아 팝'을 재즈와 컨트리 같은 장르로 해석한 데서 그래미 측의 지역 및 인종적 우월의식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우린 '북미 팝'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저런 말을 음악 장르로 여기지도 않는다.
BTS와 그래미의 갈등이 이처럼 이슈가 되는 건 작금 세계 최고의 팝 아이콘과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간 대립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래미상은 BTS가 그토록 원했던 상이었고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의 한조각이었다.(갈망해온 상과의 갈등이라는 아이러니는 그래미를 BTS의 딜레마로 만들었다.) 하지만 2019년 '베스트 알앤비 앨범' 부문 시상자로 처음 그래미 무대에 오른 이후 그래미는 습관처럼 BTS를 수상자로선 외면했고, 아미와 BTS 멤버들은 반복된 내침에 깊은 상처를 입어왔다. 그렇게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그래미 무대에 수 차례 선 끝에 나름 학습을 한 듯, 병역을 마친 BTS는 그래미가 주목할 만한 프로덕션과 호감을 가질 만한 구성을 갖춘 신작 '아리랑'을 내고 "이번엔 어떻게든!" 정도의 전의가 느껴지는 적극적 행보를 보여주었다. APMP 신설은 그처럼 BTS가 이 악물고 마지막 퍼즐을 향해 내달리고 있을 즈음 저들의 전의를 상실케 한 소식으로, 급기야 시상식을 향한 반기의 명분이 됐다.

'기생충'의 봉준호가 말은 아카데미를 로컬 시상식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 상을 받음으로써 진정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래미와 BTS의 관계도 비슷하다. 분명 그래미는 미국이라는 지역과 영어라는 언어에 기반한 로컬 행사임에도 객관적 왕중왕이 되려는 BTS 입장에선 어떻게든 품어야 할 상이다. BTS는 더 증명할 것도 증명할 필요도 없다거나, 그래미 수상 여부로 음악가의 예술적 성취를 가늠할 수 없다는 말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을지언정 그래미는 지금도 세계가 우러러보고 있으며, 그걸 받은 음악가에겐 비할 데 없는 영광으로서 유효하다. 따라서 이번 BTS의 입장은 일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해석하듯 그래미상을 앞으로도 완전히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읽히면 안 될 것이다.(성명에서도 BTS는 출품 거부를 "올해"로 한정하고 있다.) BTS는 그래미상, 특히 본상(General Fields) 수상을 분명 원하고 있되 그 상을 "지역과 언어의 구분"에서 자유로운 여건 아래 타 음악가들과 정정당당히 겨뤄 손에 쥐고 싶을 뿐이다. BTS는 그래미와 싸우기 위한 게 아니라 그래미를 바꾸기 위해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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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BTS가 한글로 또박또박 쓴 저 세 문장은 5년 전 그래미를 정조준해 저들의 부패를 공론화 한 끝에 시상식 내 익명의 권력 집단이던 비밀 위원회(Secret Nominating Committees)를 해체시킨 위켄드처럼, 그래미가 최대한의 공정함으로 한발 더 다가가길 원해 쏘아 올린 작은 공이다. 그들의 뜻과 행동에 나 역시 기꺼이 지지를 보낸다. 다만, 나는 69회 그래미 시상식이 끝난 뒤 이 보이콧 선언을 터뜨려 주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그래미 CEO도 밝혔듯 장르와 일반 부문 수상은 배타적이지 않으므로 내년 2월, 어쩌면 BTS가 그토록 목말라한 주요 부문 중 하나를 마침내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APMP 신설에 대한 큰 실망감으로 노미네이트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강경 입장에서 그랬을 거라는 짐작은 하지만, 시상 결과에 따라 좀 더 정교한 명분과 행위로써 그래미에 저항했다면 이들의 뜻이 더 효과적으로 먹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가령 자신들에게 온 그래미상을 거부하는 식으로 말이다.
일본 음악평론가 오다지마 히사에는 1993년 비요크의 데뷔 앨범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슬란드의 디바'라는 이국적 이미지를 넘어, 신비로우면서도 보편적인 '팝'의 황홀함이 가득 담겨 있다." BTS는 이번 출품 거부를 통해 '이국적' 케이팝 아이콘을 넘어 보편적인 '팝의 아이콘'으로서 자신들을 봐달라는 호소를 그래미 측에 했다. 맞선다는 건 곧 실재한다는 것. BTS는 지금 그래미에 맞서 자신들의 실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쏘아 올린 공이 지난 30년 넘게 지적되어 온 그래미의 유리 천장에 어떤 균열을 낼지 궁금하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