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퀘스트', 'AI 히어로'의 진정한 자아 찾기 여정

'비전 퀘스트', 'AI 히어로'의 진정한 자아 찾기 여정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10.2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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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잃은 비전과 쌍둥이 아들 토미의 정체성 찾는 과정 담아

마블 드라마 시리즈 '비전퀘스트'는 기억을 잃은 화이트 비전과 쌍둥이 아들 토미가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비전의 정신 공간을 저택처럼 구현하여 자비스 등 내부 인공지능들을 인간형 아바타로 보여주는 독특한 설정을 도입했다. 울트론이 조언자이자 위협으로 재등장하며, 현상금 사냥꾼 팔라딘과 신서조이드 연쇄살인범이 빌런으로 출연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사진제공=디즈니
사진제공=디즈니

바야흐로 비전(Vision)의 시간이다. 마블 드라마 시리즈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비전이 돌아왔다. 인공지능이 연일 화제인 시대에 더없이 어울리는 드라마다. 마블 드라마 ‘완다 비전’(2021), ‘전부 애거사 짓이야’(2024)에 이어 ‘비전퀘스트’가 3부작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MCU에서 AI 히어로로 활약해온 비전이 단독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비전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비전이 처음 등장한 마블 영화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이다. 토니 스타크가 창조한 인공 의식 울트론은 헬렌 조 박사(수현)를 조종해 비브라늄과 합성 조직으로 몸체를 만들고, 로키의 창에 박혀 있던 마인드 스톤을 분리해 이마에 장착한 뒤 자신의 의식을 옮기려 하지만 계획에 실패한다. 이후 토니 스타크와 브루스 배너 박사가 그 몸체에 인공지능 자비스의 코드를 이식하고 토르의 번개가 더해지면서 비전이 탄생한다.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울트론과 달리 인류를 지키는 편에 선 비전은 어벤져스의 핵심 멤버로 활약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 어벤져스 내부의 갈등 속에서 완다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에서는 완다와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마인드 스톤을 노리는 타노스에게 목숨을 잃는다. 완다와 비전의 후일담은 드라마 ‘완다비전’에서 다뤄진다. 비전을 잃고 슬픔에 잠긴 완다는 마법으로 뉴저지주 웨스트뷰 마을을 과거 미국 시트콤 같은 공간으로 바꾸고 그 안에서 비전과 부부로 살아간다.

사진제공=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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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퀘스트’의 주인공은 정확히 말하면 ‘화이트 비전’이다. ‘어벤져스’ 시리즈 등 마블 영화만 본 관객이라면 비전은 ‘인피니티 워’에서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드라마 ‘완다비전’에는 완다가 마법으로 구현한 비전과 정부조직 소드가 비전의 원래 신체를 재가동해 탄생시킨 화이트 비전이 함께 등장한다. 마지막 회에서 화이트 비전은 비전의 도움으로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 어디론가 떠난다.

‘비전퀘스트’는 비전이 지금까지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존 ‘비전과 몸은 같지만 정신은 다른 새로운 존재’라고 소개한다. 비전이기도 하고, 동시에 비전이 아닌 비전의 이야기라니 알쏭달쏭하다. 게다가 비전의 아들이 등장한다. 그 역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전부 애거사 짓이야’가 완다가 마법으로 만든 쌍둥이 아들 중 한 명인 빌리의 이야기였다면, ‘비전퀘스트’는 또 다른 쌍둥이 아들 토미(루아리드 몰리카)를 주요 인물로 내세운다. 기억을 잃은 비전과 토미가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비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울트론(제임스 스페이더)도 등장한다.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는 비전의 머릿속(정신 공간)을 저택처럼 구현하고, 비전 안에 저장된 인공지능들을 인간형 아바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비전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더미, U, 자비스, 프라이데이, 이디스가 일사불란하게 그를 돕는다. 반면에 울트론은 비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조언자처럼 행동하는 동시에 잠재적인 위협으로 존재한다.

사진제공=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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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머릿속은 마블판 ‘인사이드 아웃’을 연상시킨다. 각기 다른 성격과 역할을 지닌 AI들이 상호보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이 드라마만의 재미다. 자비스, 프라이데이 등 토니 스타크가 개발한 친근한 이름의 AI들은 ‘아이언맨’ 시리즈를 비롯해 초기 마블 영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여기에 인간의 본질과 인간다움에 대해 비전과 울트론이 나누는 열띤 대화는 인간과 AI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8부작 드라마에서 4화까지 공개된 시점에 등장한 빌런은 현상금 사냥꾼 팔라딘이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의뢰인의 지시를 받고 비전을 쫓는 인물로 퍼니셔와 데어데블과 관련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또 다른 빌런 캐릭터는 극 중 ‘떼까치 살인마’로 불리는 연쇄살인범이다. 범인은 인간에 가까운 신체와 자의식을 지닌 인공 생명체인 신서조이드라는 점에서 비전과 닮았다.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성에 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악역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비전의 가장 강력한 상대는 역시 울트론이다. 비전이 외부의 적들뿐 아니라 내부의 적과 어떻게 싸우고 어떤 결말을 맞을지 궁금해진다.

AI들이 주요 캐릭터로 나선 ‘비전퀘스트’는 시의적절한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어벤져스’ 주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단독 시리즈는 연기파 배우들을 캐스팅한 선견지명 덕분에 배우의 연기를 진득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에도 10년 넘게 비전 역할을 맡아온 폴 베타니의 연기에 빠져드는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다.

사진제공=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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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화이트 비전과 쌍둥이 아들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청자라면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두 드라마에서 완다가 마법으로 만든 쌍둥이 아들 빌리와 토미는 각각 다른 인물의 몸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간다는 설정이다.) 이야기 구성도 복잡하다. 비전의 정신세계와 현실 세계, 비전과 토미의 관계, 현상금 사냥꾼의 추격, 연쇄살인범을 둘러싼 미스터리까지 여러 갈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비전의 프로세서 속을 따라가듯 신선한 재미를 주지만, 때로는 산만하게 느껴져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앞으로 남은 네 편에서는 비전과 울트론의 대립, 비전과 토미의 정체성 찾기가 관전 포인트다. 무엇보다 화이트 비전이 기존의 비전과 차별화된 개성을 남길지, 비전 캐릭터에 얼마만큼 깊이를 더할지 주목된다. ‘완다비전’, ‘전부 애거사 짓이야’와 마찬가지로 작품성과 완성도, 개성을 인정받으며 3부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4화까지는 속도를 높이기보다 이야기를 쌓는 데 집중한다. 팬들이 기대하는 완다의 등장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비전퀘스트’ 마지막 회는 11월 11일 공개 예정이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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