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및 강남권 수요를 대체할 목적으로 한국토지공사에서 시행하는 송파신도시의 명칭이 국민공모를 통해 '위례신도시'로 최종 결정됐다.
위례신도시의 '위례'는 일반적으로 백제시대의 첫 도읍지 정도로만 알려져 왔을뿐 오랫동안 지명으로 사용되어 오지 않아 현대적 지명에서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례신도시로의 명칭변경을 계기로 위례는 언어성과 역사성이 갖는 깊은 의미에서 신도시 명칭으로 그 가치를 새롭게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언어상 유래이다. 위례는 원래 한자로 慰禮(혹은 尉)로 표기하나 이는 고유어의 차자표기(빌려쓰기)에 불과하며, 우리말로 경계를 뜻하는 ‘우리>울’(울타리, 담장)로 보는 견해와 크고(大), 많다(多)는 뜻의 ‘여르(러/리)가 아울러져 있어 현대어에서 한 울타리에서 ‘여러’이 모여 큰 고을을 나타내는 대읍(大邑)이란 의미의 고유어라고 한다.
둘째, 지리적 위치에서 역사성을 갖는다. 위례에 대한 많은 고적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첫 도읍지인 십제(十濟,위례국)국 하북위례성에서 “하남위례성”으로 이전하여 “백제”로 국호 개명하고 중앙집권적인 고대통일국가로 향한 활발한 정복활동을 펼쳤다고 전하고 있다. 즉 고대국가 백제의 시작은 하남위례성이었다고 한다.
하남위례성에 대해 '삼국사기'에서는 “북쪽으로는 한수(한강)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검단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땅(강남,탄천 일원)이 바라 보이며, 서쪽은 대해(서해)가 가로 막혀 있다” 는 지형지세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병자호란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인조실록 등 관련문헌를 보면 인조대왕이 온조왕 사당이 있는 남한산성에서 4개월여간 청나라 태종의 20만대군를 상대로 결사항전하다가 결국 삼전도(지금의 송파구 삼전동)에서 굴욕적인 항복의례가 있었다는 기록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기록과 정황을 고려하여 볼때 많은 고고학자 및 지명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지명인 ‘위례’의 위치가 오늘날의 하남과 송파, 성남탄천 일대임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을 담아 건설되는 '위례신도시'는 2000여년에 걸친 전통성과 역사성을 계승한 새로운 대읍(大邑)이라 할 것이며, 그 공간에 송파와 하남, 성남의 3개 행정구역과 주민들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사회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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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민족의 큰 기상이 살아 숨쉬고 있는 백제 왕국의 도읍지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공존하는 신도시라 할 것이다.
앞으로 위례신도시는 언어상 유래나 지리적 위치의 역사적 의미에 걸맞게 풍요로운 역사문화도시, 더불어사는 상생화합도시, 활력있는 첨단생태도시로 개발되어 수도권 주택공급확대와 강남 수요대체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미래의 살고싶은 신도시의 표본으로 삼을 명품신도시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