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도시디자인'은 선택이 아니다

[기고]'도시디자인'은 선택이 아니다

권영걸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
2008.04.07 11:01

이른 아침, 커피포트에 물을 끊여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바쁜 현대인의 일상의 풍경이다. 이 경우 그들은 커피포트를 단순히 물 끓이는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하루 중 커피포트를 사용하는 시간보다 이를 바라보는 시간이 훨씬 더 긴 편이니, 제품 하나를 사는 데도 실내공간과의 조화를 신중히 고려했을 것이다. 사용가치에서 상징가치로, 기능성에서 감성적 만족으로 소비자의 욕구가 이동하면서 디자인은 차별화의 핵심수단이 되었다. 이른바 고유 브랜드 형성이 시장의 생존법칙이 된 것이다.

도시는 어떠한가? 중세이후 제철소와 조선소를 중심으로 성장하던 스페인의 빌바오는 20세기 후반 시대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때 자치정부가 주목한 것은 문화였다. 쇠퇴 일로의 빌바오를 문화도시로 개조하기 위해 세계적 명성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고,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황금색 뱀 머리의 메두사를 연상시키는 빌바오 구겐하임의 거대한 금속 표피는 중력의 굴레를 벗어나려 몸부림치듯 유동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이후 이곳은 연간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는 도시가 되었고, 아직도 도시부흥은 진행 중이다.

이는 도시도 제품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디자인의 제품이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팔리듯, 멋있게 디자인 된 도시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제 도시디자인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 도시들이 피할 수 없는 목표이자 전략적 수단이다.

짧은 기간에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서울은 장기적인 비전에 기초하지 않은 채 조악한 도시경관을 만들어 왔다. 길과 건축물과 도시기반시설물들이 속속 도시를 채워 나갔지만 자연과의 조화, 그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갈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그동안 서울이 기능과 효율 중심의 도시, 건설과 산업 중심의 ‘하드시티’였다면, 이제 서울은 인간 중심의 도시, 문화와 예술 중심의 ‘소프트시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서울도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려 한다.

얼마 전 서울시는 '똑같은 모양, 같은 높이의 성냥갑 아파트는 더 이상 없다'고 선언했다. 무개성하고 몰취미한 박스형 아파트를 탈피해 '창의적으로 디자인된 공동주택', '주변 환경과의 조화 속에 매력과 개성이 넘치는 아파트' 건설의 비전을 내놓았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 통일성 속의 다양성을 통해 창의적인 도시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또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세워질 서울 디자인파크의 놀라운 첨단적 조형이 시민들에게 소개됐고, 그 동안 방치돼 왔던 서울의 거리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는 '디자인서울거리' 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머지않아 시민들은 그러한 변화들을 일상의 삶 속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다.

도시디자인은 성형수술이 아니다. 그것은 경관이라는 외형상의 변화를 넘어 공간의 격(格)을 높여,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환경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도시에 성격을 부여하고 정체성을 갖게 하는 일이자,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디자인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이 시대 모든 도시가 채택해야 할 전략적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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