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금리 하락 노려 무위험 차익…정부, 금리 결정방식 개선 검토
지난 7월 국민주택채권의 사재기 움직임이 포착됐다. 국민주택채권 발행금리는 3%였지만 7월25일 유통금리가 2.98%로 역전됐기 때문이다. 채권을 사고 팔 때 유통금리는 할인율 개념이다. 즉 국민주택채권을 3%에 사서 이 보다 낮은 2.98% 할인율을 적용받아 팔면 0.02%포인트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주택채권을 발행하는 정부로선 시장에서 2.98% 금리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지만, 3% 금리로 조달했으니 기회손실을 입은 셈이다. 금리 역전 현상을 뒤늦게 인식한 국토해양부는 지난 8월 초부터 국민주택채권 발행금리를 3%에서 2.5%로 0.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무려 11년 만의 금리 인하 조치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통금리 하락세로 인해 정부의 국민주택채권 발행 금리인하가 불가피해질 것을 인지했던 시장의 '큰손'들이 3%로 발행했던 국민주택채권을 뭉치로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3% 금리로 사놨던 국민주택채권을 발행금리 인하 이후 주택을 구입한 계약자들에게 2.5%에 넘겨 0.5%포인트 차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담뱃값 인상이 임박했을 때 사재기를 한 뒤 실제 가격이 오르면 차익을 거두는 방식과 유사한 구조다.
'무위험 차익거래'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국민주택채권 100억원을 사재기했을 경우 가만히 앉아 최소 2억원 이상 이득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6일 정부 및 채권시장에 따르면 국민주택채권의 발행금리 프로세스가 허술해 사채시장을 중심으로 사재기에 나서 차익을 거두는 등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주택채권은 집을 구입할 때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준조세 성격을 갖고 있다.
자동차를 살 때 매입하는 도시철도채권처럼, 주택 구입자들은 만기 5년인 국민주택채권을 보유하기보다 매입 즉시 할인율(유통금리)을 적용, 손실 금액을 지급한다.
그동안 국민주택채권의 유통금리는 발행금리보다 0.4~0.5%포인트 높게 형성돼 왔다. 결국 주택 구입자가 즉시 매도를 통해 금리 차이만큼의 손실분을 세금 형태로 낸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지속됐던 이같은 구조는 무너졌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기준금리 인하 추세에다 외국인의 채권 매수세 등으로 국민주택채권의 유통금리도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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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협회 최종호가 수익률 기준으로 국민주택채권 유통금리(민간평가사 평균)는 지난 3월22일 4.00%에서 △3월말 3.91% △4월말 3.77% △5월말 3.65%△6월말 3.64%로 내림세를 이어갔고 7월23일 3.04%로 발행금리(3%)에 근접하더니 이틀 후인 25일에는 2.98%로 역전됐다.
이 때문에 금리 인하 추세에도 '고정불변'이던 국민주택기금의 발행금리가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민주택채권 발행금액은 지난 6월 7778억원이었으나 금리 인하가 결정된 7월에 1조1500억원으로 48% 급증했다.
이후 8월과 9월 발행금액을 보면 각각 6984억원, 6429억원으로 다시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7월에 투자자들이 금리 인하를 노리고 사재기에 나선 정황이 드러난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국민주택채권 유통금리가 발행금리보다 낮으면 주택 계약자들은 즉시 매도를 통해 오히려 돈을 벌 수 있지만 계약자들이 실제 유통금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대행하는 법무사에서 제시하는 할인율로 판다"며 "여기에 사재기에 나선 사채시장 투자자들이 국민주택채권을 법무사들을 통해 명의변경 방식으로 계약자에게 팔아 무위험 차익을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도 개선안 마련에 나섰다. 국민주택채권 금리는 기획재정부와 국토부가 협의해 정하도록 돼 있지만 국민주택채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국민주택기금의 재원으로 삼고 있는 만큼 실질적 금리 결정은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국토부의 판단에 따른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민주택채권의 금리는 정책금리 성격이 있어 시장 추이에 따라 자주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동안 경직돼 온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내년부터 회계사와 금융전문가들이 참석하는 현재의 운용위원회를 통해 지난 1년간 금리 변동 추이를 살펴보고 국민주택채권의 발행금리뿐 아니라 대출금리 등을 심의하도록 변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재기를 원천차단하려면 관련법 시행령을 고쳐 명의변경을 금지해야 하는데 당시는 이례적인 상황이었고 국민편의를 목적으로 허용한 취지를 고려해 개정하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부는 국민주택채권 발행을 통해 국민주택기금의 재원으로 활용,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이나 전세자금대출 등 서민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