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법치와 관치 사이

[기자수첩]법치와 관치 사이

배성민 기자
2010.01.22 14:25

"내리는 방법만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리려면 올릴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가요?" "지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금융회사들의 입이 나왔다. 은행, 보험, 증권, 카드 등 권역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 회사의 판매 제품인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에 제약이 심한 탓이다. 은행은 대출금리, 보험은 보험료, 카드는 수수료가 가격이다. 가격은 시장 원리로 결정되는게 아니냐고 물으면 "다 아시면서 뭘…" 이런 반응이다. 입이 나왔지만 볼멘 소리는 하지 못 한다. 은행 대출 금리는 연이어 인하 러시고, 보험사들은 자동차 보험료 인상을 검토하다 멈춰섰다. 카드, 증권 수수료는 아래(인하) 쪽으로만 고정돼 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금융 당국의 입이다. 당국은 은행을 향해 "대출 원가가 떨어졌는데 가산금리를 높게 유지하는 것은 아닌지"라며 의구심을 표시한다. 자동차 보험료 문제는 아예 연초 물가 안정 대책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올리지 말라는 얘기다. 카드 수수료(재래시장 등)는 일선 당국자를 넘어 대통령까지 관심을 표명했다.

금융회사들은 가끔씩 'No(노)'를 외치고 싶지만 그럴 재간이 없다. 약점도 있다. 주요 은행들은 해당 금융지주사의 회장 인사를 앞두고 있다. 손보사 CEO들은 다른 건이긴 하지만 제재 대상으로도 거론된다. 시장 상황을 보긴 하지만 제품 값을 매겨야 하는 최고책임자가 '정무적인' 고려까지 해야 하니 제대로 된 가격 산정은 당연히 어렵다.

문제는 압력성 유도가 제도적인 뒷받침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원리를 거스리는 경우도 많고 기준이 아닌 처분적 입법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상 금융위원회의 작품인 새로운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코픽스)나 사외이사 제도개선안은 예방이 아닌 사후적인 대처에 가깝다.

금융당국은 정당한 경영지도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치'라는 곱지 않은 시선에는 손사래를 친다. 최근 정부는 유달리 법치를 강조한다. 떼법은 엄벌하겠다는 다짐도 내놓는다. '나를 따르라'며 눈을 부라리는 관치는 정작 법치와는 거리가 있다. 너무 당긴 활의 화살은 과녁에서 빗나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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