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과 대기업 사이의 갈등으로 벼랑 끝에 놓인 건설회사가 또 등장했다.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을 요청한 효성그룹 계열 진흥기업 얘기다. 유동성 악화로 지난 해 12월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던 한솔그룹 자회사 한솔건설의 사례와 꼭 닮았다.
◇채권단 "오너 책임"vs대주주 "여력없어"= 진흥기업과 한솔건설은 공통점이 많다. 대기업 계열 건설회사로 '대주주 후광효과'에 힘입어 지난 해 5월 채권은행 기업 상시평가에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C등급'을 면했다는 점에서다. 정상기업(B등급.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분류된 후 대주주가 자금 지원에 나섰으나 부동산 경기침체로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된 것도 공통점이다.
한솔건설은 결국 지난 해 12월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채권단과 대주주간 '기싸움'도 이 때부터 본격화됐다. 우리은행은 계열사 부실 책임을 채권단에 떠민다며 '오너'의 자금 지원과 자체 경영 정상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한솔그룹은 그러나 더 이상의 지원은 어렵다며 '법정관리'를 택했다.
진흥기업도 현재까진 비슷한 수순이다. 올 들어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하고 있는 수백억원 규모의 어음과 차입금 결제에 허덕이다 지난 10일 우리은행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자체 유동성은 물론 효성이 지원한 자금도 모두 바닥난 상태다. 하지만 채권단은 효성이 대주주로서 성의있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내놔야 지원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효성 '돈줄'이 관건, 최악 '법정관리' 수순= 진흥기업의 생사 여부는 채권단과 대주주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금융권에선 효성이 '밑빠진 독'이 된 진흥기업에 채권단이 수용할 만한 수준의 자금을 지원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효성이 사실상 진흥기업을 포기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채권단 관계자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자금 여력이 충분한 효성이 채권단에 손을 벌렸다는 건 사실상 진흥기업을 놔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지난 해 시한 만료로 소멸되면서 채권단이 공동 지원할 만한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촉법이 사라져 채권 금융기관 모두가 진흥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합의 장치가 없다"며 "기촉법이나 '채권은행협의회 자율협약'을 준용할 수 있지만 제2금융권 등이 모두 합의해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진흥기업 채권 금융회사 60여개 중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비율이 절반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이나 대주주 모두 지원을 거부하면 진흥기업은 한솔건설의 전철을 밟아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소멸된 기촉법을 대체할 만한 해법을 찾지 못해 채권단이 합의에 이르지 못 하고 대주주마저 손을 놓으면 진흥기업은 '제2의 한솔건설'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