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기업은 지금···'벼락치기' 열공中

[기자수첩]공기업은 지금···'벼락치기' 열공中

오상헌 기자
2011.03.27 15:34

"매년 이런 식이면 조직 효율화는커녕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 할 판입니다".

얼마 전 만난 한 금융 공기업 임원의 하소연이다. 공공기관(장) 경영평가와 관련된 얘기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20일부터 공기업 평가가 시작됐다. 평가 대상인 100개 공기업과 96명의 기관장은 이미 초비상이다.

매년 상반기 공기업들은 사실상 일손을 모으기 힘들다. 이맘 때 시작돼 5월 말쯤 끝나는 경영평가를 준비하고 평가단의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핵심 인재들은 거의 대개 경영평가 태스크포스(TF)에 투입된다. 평가 등급을 좋게 받는 방법을 고민하고 평가단의 기호에 맞는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주업무다.

조직으로선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현장에서 뛰어야 할 인재들을 활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손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경영평가 기간엔 조직 역량을 모아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렵다"며 "무엇을 위한 경영효율화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고 말한다.

기관장의 관심사도 온통 경영평가로 쏠릴 수밖에 없다. 평가를 잘 받지 못 하면 최악의 경우 해임될 수도 있어서다. 실무 현안에 대한 내용을 '암기'하느라 밤을 새우는 기관장도 있다고 한다. 평가단이 실무자 수준의 답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정작 조직 현안이나 중요한 일이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한 공기업이 기관장 이름을 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내놔 'CEO 홍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수의 공기업 관계자들은 이 또한 "공공기관장에 대한 경영평가를 앞두고 해당 공기업이 무리수를 둔 측면이 있다"고 해석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방만 경영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고도 각종 성과급 '돈잔치'를 일삼는 공기업이 허다한 우리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의 공기업 경영평가를 '평가'해 보면 썩 좋은 등급을 매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요령'을 알고 '벼락치기'만 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평가는 좋은 시험이 아니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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