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금리유혹, 기업들 퇴직연금 바꿔볼까

은행 금리유혹, 기업들 퇴직연금 바꿔볼까

반준환 기자
2011.04.06 16:48

은행, 보험·증권보다 0.6%포인트 가량 높아… 내부 기준금리 차이탓

"은행이 퇴직연금 제안서에 기재한 금리가 너무 높아 어리둥절했습니다. 이 은행 법인 정기예금도 4% 내외인데 정작 입찰서에는 5.8%가 적혀있더군요. 거래은행 변경 같은 요구가 있을까 싶어 결정은 미루기로 했습니다만…."

지난 5일 금융권의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을 받은 T사의 퇴직연금 담당자는 서류를 열어보고 눈이 커졌다. 보험, 증권 등 입찰에 참여한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A은행의 조건이 워낙 좋아서였다.

보험과 증권사들이 제시한 금리조건도 연 5%대 초반(수수료포함 기준)으로 낮지 않았으나, 이 은행은 이 보다 0.7%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회사 관계자는 "A은행을 선정하려 했으나, 조건이 너무 좋아 의심이 들었다"며 "퇴직연금 가입 후 꺾기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싶어 본점에서 확인서를 끊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최근 퇴직연금 유치를 위해 몸을 내던지는 은행이 많아 기업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예금이나 대출금리에서는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은행들이, 유독 퇴직연금에서만큼은 저자세여서다.

은행들이 제시하는 조건만 보면, 퇴직연금 가입기업은 'VIP고객'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퇴직연금에 제시하는 금리는 대개 5%대 후반으로, 거액자산가도 받기 어려운 수준이다. 일반고객들이 받는 정기예금 금리는 4% 안팎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이미 퇴직연금에 가입하기로 한 기업들이 은행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줄 잇고 있다. 보험, 증권사 등과 가입을 약속한 업체뿐 아니라, 이미 계약을 한 곳도 이를 뒤집는 곳이 나타나고 있다.

상장기업 K사를 비롯해 의류업체 D사, 제약업체 A사, 전자부품업체 C사 등이 최근 취급기관을 보험·증권사에서 은행으로 갈아탔다. 눈치는 보이지만 직원들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C사 관계자는 "자사주 관리를 위탁했던 증권사의 퇴직연금을 가입하기로 했으나, 최근 주거래은행으로 바꿨다"며 "5%대 후반의 원리금 보장금리를 제공한다는 은행과 기존 업체의 차이가 너무 컸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에 경쟁이 치열하다고는 들었으나, 이 정도였는지는 몰랐다"며 "증권보단 보험사의 조건이 다소 좋았는데, 은행과는 비교가 안됐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에서 은행들의 조건이 좋은 이유는 다른 금융기관과 차별화된 금리체계를 적용하고 있어서다.

보험과 증권사들은 출혈경쟁을 막자는 차원에서 만기가 다른 회사채 시장금리를 가중평균해 금리상한으로 제시한다.

반면 은행은 FTP라는 내부 지표금리 기준으로 삼는다. 부서간, 본·지점간 자금이전금리라고 하는데 △자금조달금리 △영업신장 가산금리 △내부 정책금리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대출금리까지 감안하는 사례도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은행들과 사전협의를 거쳐 조건을 정한 후, 보험이나 증권사를 들러리 삼아 입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금리경쟁을 부추기기 위한 편법이다.

은행으로 '등을 돌린 기업'에 대한 섭섭함은 금융당국을 향한 화살로 바뀌고 있다. 금융위원회·감독원이 퇴직연금 영업에 대해 공정한 경쟁기준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자율상한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으나, 이로 인해 은행권의 힘만 키운 듯 하다"며 "은행의 높은 이자에 보험사들이 따라가고 출혈경쟁으로 인한 피해는 증권사가 떠맡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은행 FTP가 퇴직연금의 시장혼란의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금융당국이 어떤 형태로든 손을 봐야할 것"이라며 "시정이 늦으면 앞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할 기업들에게도 과거 수준의 고금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우려가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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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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