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괜찮다'는 저축銀, '못믿겠다'는 소비자

[기자수첩]'괜찮다'는 저축銀, '못믿겠다'는 소비자

신수영 기자
2011.05.24 17:26

2000년대 중반 베트남 하노이 지점에 발령을 받았던 한 글로벌 은행 기업금융 담당의 얘기다. 처음 가보니 캐시카운팅(cash counting)팀이라고 6명이 종일 앉아 돈만 세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개인들이 집안 금고 등에 돈을 모아두고 있다가 자루 째 은행으로 들고 와 결제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트남의 은행 이용률은 아직 15~20%에 불과하다. 그는 "이체는 최근 들어 약간씩 늘어나는 추세지만 거래는 아직까지 현금결제 비중이 높다"고 전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는 이유는 아직 금융 산업이 발달하지 못해서다. 이외에 은행을 믿지 못한 것도 한 이유라는 분석이다. 역사상 전쟁이 잦았고, 그러다보니 은행이 망하는 경우도 흔했다. 은행에 돈을 맡겼다 떼어먹힌 경험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노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은행들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매 블록마다 출장소 성격의 작은 점포들이 고객들을 부른다. 이들 현지 은행들은 예금금리가 14% 안팎이고 대출 금리는 20~22%에 달한다. 정부가 예금금리 규제에 나서자 사은품을 주거나 뒷돈을 주고 예금을 끌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작은 규모나 서민 금융을 주로 한다는 점 등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옛 상호신용금고(저축은행)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베트남을 방문했던 시기, 한국에서는 제일저축은행의 뱅크런이 이슈였다. 임원의 대출관련 금품 수수 건이 문제였는데 고객은 '은행 부실'로 번질 것을 우려해 예금 인출에 나섰다. 인출 속도에 가속도가 붙으며 대규모 인출(뱅크런)이 일어났다.

'금품 수수가 왜 뱅크런으로 이어지느냐'며 당국과 해당 저축은행은 당황했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들은 "금융당국도, 저축은행도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거래하는 저축은행이 망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넘어 "5000만 원 이하는 (예금자)보호를 받는다는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게 저축은행을 꺼리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정서다. 금융 전문가들도 "금융감독 개혁을 위해 구성된 테스크포스(TF)를 못 믿겠다, 나올 게 뻔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베트남이든 한국이든 금융은 신뢰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 베트남은 이제 막 금융 인프라를 갖추기 시작한 국가여서 금융 산업도 신뢰를 얻어가며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는 어떤가. 금융당국과 저축은행의 신뢰 회복이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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