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900조 시대 "집 때문에…"

가계빚 900조 시대 "집 때문에…"

신수영 기자
2012.02.22 16:39

일반 가정들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과 신용카드 등을 긁어 생긴 외상을 합한 가계 빚(가계신용)이 지난해 말로 900조원을 넘어섰다. 자영업자들의 금융기관 대출액까지 합하면 1000조원을 가뿐히 넘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지난해 6월 말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빚 증가 속도는 다소 느려졌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매 분기마다 가계대출이 15조원 안팎씩 늘어나는 상태가 수년 째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며 가계부채의 질도 좋지 않다는 평가다.

◇가계부채, 양 늘고 질 악화=분기별 가계신용 증가액은 지난 2010년 3분기 16조3000억원, 4분기 27조8000억원, 2011년 1분기 10조4000억원, 2분기 18조9000억원, 3분기 14조3000억원, 4분기 22조3000억원 등을 기록했다.

일단 전체적으로 증가세는 소폭 둔화됐다. 4분기 증가폭이 3분기에 비해 커지긴 했지만 연말은 계절성(이사 등이 늘며 대출 수요 증가)으로 인해 다른 분기보다 증가폭이 크다.

홍춘욱 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정부 규제의 효과로 총량 증가속도는 둔화됐다"면서도 "판매신용이 늘어나는 등 질이 개선되지 않고 있고 2금융권 부채도 증가세여서 내용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빚을 내지 못한 서민들이 다른 금융기관으로 발을 돌리는 점이 첫 번째 문제다. 한은에 따르면 가계대출은 2010년 이후 이후 은행보다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등에서 더 빨리 늘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비은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17.9%로 같은 기간 중 은행의 대출 증가율(8.5%)을 2배 이상 웃돌았다.

저축은행 등이 가계에 대한 대출을 확대했고, 지방의 단위 농축협 등 상호금융도 대출을 크게 늘렸다. 상호금융 대출 증가는 지방 주택가격 상승세에 힘입은 것으로, 2000년대 중반 부동산 시장 활황과 은행들의 공격적 대출 확대로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났던 상황과 오버랩된다.

보험사와 카드사, 증권사 등 기타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상승세도 가파르다. 2010년 14조5000억원이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3조8000억원이 늘었는데 당국의 규제가 어디에 집중되느냐에 따라 보험사와 증권사 등으로 대출수요가 이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국내 가계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변동금리형이 대부분으로, 기간도 3~5년의 단기 대출이 많다.

생계가 어려워진 가계들이 주택담보대출의 상환압박에 시달릴 경우 가계 재무구조 악화가 금융 기관 부실로 이어지면서 실물경기로 파급→가계소득 감소→가계신용 추가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환 능력 없어 허덕..악순환 계속=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점은 생활형 자금 성격의 대출 증가다. 이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이 주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도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주택담보대출 중 주택구입 이외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비중이 2008년 말 7%대에서 2010년 상반기에는 47.4%까지 늘어난 점을 짚었다. 이와 함께 신용대출, 신용카드 대출 등의 증가세도 지속됐다.

생활형 자금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가계 소득여건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가격 상승, 물가 상승 등으로 가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더 빠르고, 유럽 발 재정위기로 경기둔화 우려도 큰 상황이다.

지난 1999년부터 2010년까지 11년 동안 가계부채는 연평균 13% 늘어 국내총생산(GDP) 연평균 성장률(7%대)을 크게 앞질렀다. 더욱이 소득 증가율은 GDP 성장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GDP(한은 속보치)는 3.6% 증가했지만 국내총소득(GNI)은 1.1% 증가에 그쳤다.

무엇보다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의 부담이 크다. 지난해 하반기 하위 20%의 저소득층(소득 1분위)의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34%로 치솟은 점이 단적인 예다. 처분가능소득을 100으로 봤을 때 저소득층은 134를 지출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평균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50% 수준이지만, 이들은 이 비율이 300%에 달해 소득에 비해 부채가 많다. 이는 경기 둔화나 부동산 가격 하락 등에 따라 빚 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계 상환능력 악화=가계는 이미 이자 갚기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등의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한은이 통계청과 함께 조사한 가계신용조사에 따르면 만기 일시 상환으로 대출을 받은 가구 세 곳 중 한곳(31.1%)은 원금상환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들은 주로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들로 담보대출에 비해 높은 금리를 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원리금 또는 원금 분할상환으로 대출을 받은 가구 중에서도 89.6%는 매달 은행에 이자와 원금 등을 내는 일이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이들은 다시 빚을 내는 등의 방법으로 원리금 등을 갚고 생계를 잇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계신용조사에서 대출을 은행에 대출을 신청한 가구 중 67.1%만이 원하는 액수를 빌릴 수 있었고 5.9%는 아예 받지 못했다. 희망액수를 채우기 위해 고금리를 무는 비은행기관으로 발길을 돌린 가구도 절반이 넘었다.

그러나 이자 부담의 주 원흉은 집이다. 이번 조사에서 지금은 빚이 없지만 1년 뒤에는 빚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한 가구의 42%가 집값(전세비 포함)을 주된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미 빚이 있는 가구의 17.1%도 살 집을 마련하거나 전세보증금을 내느라 1년 뒤 빚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는 부동산 등에 기인하고 있어 실물 경기 흐름이 매우 중요하다"며 "경기 둔화로 저소득층의 상환능력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금리가 높은 2금융 등의 부채가 늘고 있어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소득층의 상환능력을 주시하면서 필요 시 여러 가지 보완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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