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에 유명한 과일 가게 두 곳이 있다. 정확히 마주보고 있는 두 가게는 한 곳이 수박을 반값에 팔면 다른 한 곳도 곧바로 할인에 들어간다. 이처럼 경쟁자라면 상대방에게 손님을 뺏길까 촉각을 곤두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 금융시장에는 경쟁자들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손님을 빼앗아 갈까 겁내지도 않는 금융회사들이 있다. 저축은행들이다.
캐피탈 회사들이 독식하고 있던 할부금융업에 저축은행 진출이 허용됐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관련 개정안이 의결되면서 내년 1월부터 저축은행은 할부금융업에 진출하게 됐다.
'밥그릇'이 줄어들게 생겼으니 캐피탈업계에 비상이 걸려야 마땅한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한 캐피탈사 관계자는 "솔직히 신경쓰지 않는다"며 "허용해도 제대로 캐피탈 회사들과 경쟁할만한 업체가 없다"고 말했다.
허풍이 아니다. 당국에서 신규사업 영역을 내줬는데도 할부금융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저축은행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저축은행업계 스스로도 캐피탈업계의 완벽한 우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실제 수치로도 증명된다. 할부금융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자동차 관련 상품은 이미 자동차 제조업체 계열 캐피탈사들이 독점점으로 점유하고 있다. 개정안을 제출한 금융위원회도 이 점을 고려해 저축은행에게 허용한 영역을 '개인·소상공인 등에 특화된 할부금융업'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쉽지는 않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개인 소상공인 등에게 특화된 지역 밀착형 시장이라면 농기구 할부금융 등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이미 이 영역은 농협이 장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할부금융 허가가 전형적인 '생색내기'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경쟁자를 위협할 형편도 안되는 저축은행들에게 할부금융 진출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다.
물론 저축은행업계 자체의 경쟁력강화 노력이 전제조건이지만, 대표적인 '서민금융' 기관인 저축은행을 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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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발전방향 태스크포스(TF)가 다음달에 보여줄 결과물에는 '생색용'이 아닌 '의미있는 새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기를 금융소비자와 저축은행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