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차명 금지 불가론을 위한 변명

[기자수첩]차명 금지 불가론을 위한 변명

박종진 기자
2013.08.12 17:30

"20년이 지나도 차명거래 금지 논쟁이 벌어지는 걸 보면 당시 검토가 제대로 되긴 됐네요." 금융실명제를 만든 주역이었던 한 전직 관료는 차명거래 금지의 비현실성을 역설적으로 이렇게 지적했다. 차명거래를 금지 안 시킨 탓에 온갖 비리범죄가 일어나는 거면 벌써 금지시켰지 20년 동안 끌어왔겠냐는 얘기다.

실명제가 전격 발표된 지 꼭 20년이다. 20년이란 숫자에 구태여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CJ·전두환 비자금 수사를 계기로 확산된 지하경제 양성화, 비리척결의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정치권이 차명거래 금지를 골자로 하는 각종 개정안을 쏟아내고 있다.

성난 민심을 등에 업은 정치권의 공세와 실효성, 부작용을 걱정하는 금융권의 고민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다행히 논쟁과 토론이 존재한다. 어차피 검은 거래는 막는 대신 범죄와 무관한 일반 사람들의 불편을 최소화하자는 방향에는 모두 동의한다. 불법적 차명거래를 실제로 줄일 수 있는 해법 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여전히 있다. 차명거래 전면 금지를 마치 근본적 방안, 즉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고 여기에 반대하면 나약한 현실적 불가론이나 들먹이는 범죄척결에 소극적 입장으로 간주하는 시각이다.

보다 건설적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차명거래 여부 자체를 금융회사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 실명법이 아니더라도 개별법에서 범죄에 연루된 차명을 이미 금지하고 있다는 것도 전제해야 한다. 실명법에서 한 번 더 차명거래를 금지시킨다고 불법을 작심한 자의 범죄행위를 막는 효과는 거의 없는 셈이다.

아울러 차명거래를 금지시켰을 경우 생길 불편이 바로 내 얘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차명거래 문제는 나는 서민이니까 상관없는 게 아니다. 자칫 친구사이에 차용증 없이 빌려준 금전거래 등을 과세당국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뺄 수도 있다.

결국 차명거래의 악의를 정확히 잡아낼 수 있는 제도나 정책수단을 만들어내야 한다. 차명거래는 범죄를 위한 수단이나 매개일 뿐이다. 금지가 아니라 잡아내는 게 필요하다.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차명거래 사전등록제나 인센티브 제도도 검토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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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재계를 맡고 있습니다. 개인이 잘되고 기업이 잘되고 그래서 나라가 부강해지는 내일을 위해 밀알이 되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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