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멈추면 다시 켜기가···나눔 끈 놓치 않아요

스위치 멈추면 다시 켜기가···나눔 끈 놓치 않아요

홍재의 기자
2013.09.12 05:30

[당당한부자]<1-1>'아너소사이어티'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68)겸 반도체 메모리 모듈 생산업체 태인 대표/사진=홍봉진 기자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68)겸 반도체 메모리 모듈 생산업체 태인 대표/사진=홍봉진 기자

"손기정 선생님? 양아버지세요. 생전에 모시고 백두산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황영조, 장미란 다 내 양딸, 양아들이에요. 지금도 운동하는 학생들 장학금 수여할 때 늘 황영조, 장미란이 와서 직접 수여하죠"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68)겸 반도체 메모리 모듈 생산업체 태인 대표는 현재 맡고 있는 직함만 열가지가 넘는다. 기업 대표등 경영과 관련된 직함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네팔 친선협회회장, 한국-파키스탄 친선협회 고문, 대한체육회 남북 체육 교류위원회 위원장 등 사회공헌에 가까운 직함들이다.

국내 대학 산악부로서는 최초로 1980년 히말라야 마나슬루(8156m)를 오른 것에서 연 4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태인 대표에 오르기까지 늘 나눔의 길을 걸어왔다. 직함도 많고 나눔도 많았기에 주위에 사람도 많다. 이를 바탕으로 36세에 금형가공회사인 우영의 전무이사, 39세에 누전차단기 전문회사인 대륙 부사장, 43세에 태인을 창립했으니 세상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셈이다.

이 회장의 인생은 산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현재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거니와 어린 시절 인왕산을 놀이터삼아 오를 때부터 늘 산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인왕 클럽'이라는 산악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동국대학교 산악부에는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산 때문에 전쟁에까지 참여했다고 하니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이 회장은 1966년 베트남에 등산 장비가 많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월남전에 참전했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온 이 회장은 당시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던 등산용 로프 등 등산 장비를 닥치는대로 구해왔다.

이 회장이 나눔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결국 등산이었다. 삶과 죽음의 고비가 교차한 순간에서 비롯된 것. 1969년 히말라야 원정을 1년 앞두고 국내 손꼽히는 등산가들이 설악산에서 등반 훈련을 하던 18명 중 10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훈련을 하다가 눈사태를 당해 사망했다. 대청봉을 등반하고 있던 이 회장은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구했다.

마나슬루 등반 중에도 아찔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등반중 사진촬영을 위해 등반로 깊숙이 들어갔다 셀파가 이 회장의 짐을 갖고 사라진 것. 이 회장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치며 5시간가량을 홀로 헤맸다. 기적적으로 텐트를 발견해 일행과 합류했으나 이날 이후 이 회장의 인생관은 크게 바뀌었다.

이 회장은 1990년부터 '태인 체육장학회'를 설립해 체육 꿈나무들을 후원하고 있다. 한해도 거르지 않고 23년 동안 총 2억원이 넘는 돈을 쾌척해 수많은 체육 꿈나무들을 후원했다. 지금이야 약 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그룹의 대표지만 장학회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매출이 지금의 10분의1 수준이었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68)겸 반도체 메모리 모듈 생산업체 태인 대표/사진=홍봉진 기자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68)겸 반도체 메모리 모듈 생산업체 태인 대표/사진=홍봉진 기자

처음에는 충청북도지역 산악부, 육상, 마라톤, 스키 선수들을 대상으로 시작해 점차 대상을 늘려나갔다. 최근에는 황영조 추천 유망 마라톤 선수, 장미란 추천 유망 역도선수, 이은경 추천 유망 양궁선수 등 국내 스포츠 영웅들과 함께 꿈나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은 "언젠가 도와주겠다고 생각해서는 언제까지도 할 수 없다"며 "스위치를 멈추면 다시 켜기 어렵기에 지금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기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누는 삶을 통해 "내가 더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국가대표선수가 되기도 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12일에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해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300번째 회원으로 등록했다. 이날 기부한 1억원도 이 회장의 뜻에 따라 체육 꿈나무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이 회장의 최근 관심사는 박영석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활동이다. 박영석 기념관은 故박영석 대장의 삶의 터전이었던 마포구에 약 1000㎡ 규모로 추진을 준비 중이다. 산악계, 정재계, 체육계, 문화계 등 사회 각 분야의 저명인사 40명으로 발족해 현재는 400여명이 뜻을 함께하고 있다.

故박영석 대장은 지난 2011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신루트를 개척하던 중 실종됐다. 그는 8000미터 급 히말라야 14개봉, 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 지구3극점,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정해 세계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 회장은 대한산악연맹 회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故박 대장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80년 이 회장이 등반대장으로 동국산악회를 이끌고 마나슬루를 등정했을 때 국내에서는 그를 위해 카퍼레이드를 열어줬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故박 대장은 이 장면을 보고 이 회장의 모교인 동국대 산악부 진학을 결심하고 재수까지 마다않고 동국대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故박 대장의 등산 인생이 시작됐기에 이 회장은 아직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만약 그 때 카퍼레이드를 보지 않았다면 서로의 운명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며 "최근에도 박 대장의 가족을 만나는데 늘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고 박영석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활동을 주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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