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상당기간 물가안정목표의 하한을 하회)은 실물경제 면에서 심각한 수요 위축을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 다수의 일시적 공급요인과 제도변경의 효과가 중첩돼 나타난 데 주로 기인하는 것이며 점차 완화될 것이다."
작년 이맘때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의 한 대목이다. 한은은 이 성명에서 "2014년 국내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고 소비자물가는 오름세가 점차 확대될 것"이라 전망했다. 국내경제가 올해 중 "글로벌 경기회복, 소비 및 투자 증대 등에 힘입어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란 전망에 의거해서다.
1년전 낙관론은 결과적으로 빗나갔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월 1.0%로 떨어지며 25개월 째 1%대 상승률을 이어갔다. 한은 스스로도 1월 2.3%던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4월 2.1%, 7월 1.9%에 이어 10월 1.4%로 낮췄다. 10월부턴 통화정책방향 성명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2.5~3.5%) 범위 내에서 유지되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란 문구마저 빠졌다.
최근 들어 한은은 '미리 포착하지 못한 구조적 변화'로 2012년 당시 설정한 물가상승률 목표가 과도한 점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번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저성장, 저물가는 경기순환적 요인 뿐 아니라 구조적 요인이 복합돼 있다"고 밝혔다. 저성장 탈출엔 통화정책보다 구조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 방점이 있는 발언이긴 하지만 저물가를 공급측 요인에만 귀인하던 올해 초와는 달라진 대답이다.
한국은행은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 전망을 다른 기관보다 높게 잡아 왔다. 일각에선 한은의 경기인식이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올해의 경우, 성장경로가 예상과 달라진 데는 세월호 사고라는 예상치 못한 대참사가 발생한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세월호 이전에도 만성화된 소비성향 하락 등 예사롭지 않은 내수부진 신호들은 발견돼 왔다. 1년 새 확연히 달라진 경기 인식의 원인을 '세월호'에만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이유다.
일부러 비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통념에 묻혀 현상이 간과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한은의 조사·연구 역량은 인력이나 규모 면에서 가히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다. 24일 발표하는 2015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엔 한 해 전보다 더 적확한 경기 진단이 담겨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