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2000년 GE써모메트릭스코리아 대표로 취임했을 당시 에피소드를 꺼냈다. 출근 첫 날 컨퍼런스콜(전화회의)을 하는데 미국 본사에서 대뜸 "후임자가 누구죠"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속으로 언짢았다고 한다. 후임자를 묻는다는 건 짐 쌀 채비하라는 말로 받아들일 법한게 우리 정서다.
'무례'한 질문을 한 이유는 이렇다. 대표 한 사람에게 집중된 구조는 그 자체로 리스크다. 경영방침과 철학을 공유할 후임자 후보군을 거느려야 떠난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위험분산 차원이기도 하지만 후임자를 얼마나 잘 키우느냐도 최고경영자(CEO)의 덕목과 능력으로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 청장은 그래서 늘 잠재적인 후임자를 살피고 육성한 뒤 성과를 보고했다고 한다. 자신의 평가도 이와 직결됐다. CEO가 바뀔 때마다, 더 크게는 기관장이나 장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느라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출했을까. 이를 감안하면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물론 전임 공공기관장이 일반 기업처럼 후임자를 추천할 권리를 가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철학과 정책을 공유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더구나 관가에서는 임기 내내 전임자의 정책만 뒤집다 퇴임했다는 한숨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걸 보면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다.
지난 1월 기업가 출신으로 첫 중기청장에 임명된 주영섭 청장은 종종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보면 완벽에 가깝다. 그래서 제도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것보다 종전의 대책 중 현장과 괴리돼 있어 실행력이 떨어지는 분야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간부들과 정책의 철학을 공유하고 방향을 잡아나가기 위해 살인적인 회의와 일정을 소화할 정도다.
다만 주 청장이 말한 GE의 사례처럼 수장의 철학이 조직 안에서 공유되고 있는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그것은 논리보다 정서적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