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재보선, 영광의 당선자들
4.27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 프로필, 당선 소감 등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각 지역별 당선자들의 비전과 이야기를 통해 선거의 의미와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4.27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 프로필, 당선 소감 등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각 지역별 당선자들의 비전과 이야기를 통해 선거의 의미와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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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당선자는 27일 "부족한 저를 선택해 준 구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침체된 중구를 명품도시 중구로 바꾸라는 주민들의 엄중한 명령으로 생각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최 당선자는 이날 실시된 재선거에서 51.30%를 득표해 48.69%를 얻은 민주당 김상국 후보를 누르고 중구청장으로 확정됐다. 최 당선자는 선거 승리 요인에 대해 "명품중구로의 발전욕구와 서울시 행정부시장 출신에 대한 기대가 부합됐기 때문"이라고 자평한 뒤 "선거기간 중 주민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반드시 실천해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평생 공직생활만 하다 처음으로 선거에 뛰어들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한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다"며 "선거를 통해 분열된 중구 주민을 하나로 화합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당선자는 또한 "여당과 야당을 떠나 오직 중구발전만을 생각하는 합리적인 화합을 추구하겠다"면서도 "중구의 문화유산, 자연자원을 보전하면서 주민
손학규 야권단일후보가 27일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이 확정됐다. 다음은 경기도 분당시 정자동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손 후보와의 일문일답. - 당선 소감은?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 그러나 기쁨과 감사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 느낀다. 변화에 대한 명령, 이것이 저를 당선시켜주신 분당 유권자와 국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 출마 계기는? ▶승리를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분당을'이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중산층 도시를 포기할 수 없다는 사명감에서 나왔다. 우리가 중산층을 포용하는 능력과 자세를 보여줘 정권교체의 단초를 만들 수 있고 그러한 의지를 보여줘 민주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다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이대로는 안 된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민 열망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국민이 어떤 변화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우선 민생이 어렵다. 중산층 대표적 도시인 분당에서도 서민생활 어렵고 중산층이 점점
27일 4·27 강원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강원도 춘천에서 초·중·고교, 강원대 영문과를 졸업한 강원도 토박이다.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한 뒤 84년 MBC에 입사했다.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보다 춘천고 5년 후배며 MBC 입사도 10년 늦었지만 MBC 사장은 먼저 됐다. 언론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이력이 보탬이 됐다. 보도국 사회부 기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5년 노조위원장에 당선돼 이듬해 불법파업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해직되기도 했다.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과 보도기자상, 방송문화진흥대상 등을 수상하는 등 기자로서의 역량도 인정 받았다. 복직한 후 1998년부터 2년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을 지냈고 산별노조 전환 및 초대 위원장으로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출범을 주도했다. 노조위원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5~2008년 MBC 사장을 지냈다. 2008년 18대 국회에 민주당 비례대표로 들어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해 왔다.
4·27 재보선 김해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김태호 당선자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http://twitter.com/taehois)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김태호 당선자는 27일 오후 11시 50분쯤 당선 후 첫 트윗으로 "경남의 아들로서, 김해 일꾼으로서 다시 뛸 수 있는 김해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김해를 동남권의 경제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당선자는 "선거현장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바와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며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할 것임을 강조했다. "1년을 4년 같이 죽을 각오로 일하겠다"는 다짐도 비쳤다. 경쟁 상대였던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에게도 "힘든 선거전을 완주하신 이 후보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다.
지난 2월 민주당 지도부가 폭설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 강릉을 찾았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은 저마다 삽을 들고 제설작업에 힘을 보탰다. 정치인들의 이런 민생행보는 보통 '사진찍기' 용이다. '쇼'로 끝내는 게 대부분이다. 당시 현장에는 기자 10여명도 있었다. 하지만 정오께 시작한 손 대표의 '삽질'이 1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기자들은 기다리다 못해 철수했다. 손 대표는 한참 뒤인 5시가 넘어서야 작업을 끝냈다고 한다. 손 대표는 탄광을 방문할 때도 막장에 내려가 광부들의 일과가 끝날 때까지 탄을 캐고 함께 샤워장으로 가 몸을 씻는다. 산업현장 방문을 하면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건성'으로 둘러보지 않고 꼼꼼히 챙겨본다. '노숙투쟁'을 할 때도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약속한 날 동안은 절대 텐트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손 대표를 아는 사람들은 손 대표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5년 한 언론에 의해 '국회 출입기자들이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가 27일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이봉수 야권단일후보를 꺾고 당선이 확정됐다. 다음은 경남 김해시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김 후보와의 일문일답. - 당선 소감은? ▶김태호의 진심을 받아줘서 감사하다. 김해의 진정한 변화와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 일할테니 믿어 달라. 서민의 가슴에 얼마나 큰 아픔이 있는지 알겠다. 서민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은 선거였다. 그 어떤 정당이나 정부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당과 정부는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 김해시를 위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할 예정인가? ▶우선 가장 시급한 일은 부영임대아파트 분양전환 문제와 제2터널의 조속한 착공이다. 임기는 1년 뿐이지만 그 1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해 김해의 대들보를 놓아 김해의 미래를 준비하겠다. 김해를 진정한 명품도시로 만들고 싶다. - 야권단일후보의 지지율도 꽤 높게 나왔다. ▶야당 후보를
김태호(49) 전 경남도지사는 국무총리 낙마라는 치명타를 딛고 입법부에 안착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김 전 지사는 부친의 친구이자 고향인 경남 거창에 지역구를 둔 이강두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도의원→군수→도지사'를 거쳐 18대 국회에 입성했다. 한나라당 후보로 1998년 6·4지방선거에서 경남도의원에 당선됐다. 4년 뒤인 2002년 6·13지방선거에서는 40세의 나이로 거창군수에 당선, 최연소 기초단체장이 됐다. 3선에 성공한 김혁규 지사가 청와대 경제특보에 내정되면서 2004년 재보선이 실시되자 전격 출마, 전국 최연소 광역단체장(42세)이 됐다.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도 김두관 열린우리당 후보를 제압하고 경남도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보좌관 시절부터 쌓아 온 인맥이 폭넓다. "김 전 지사가 자주 인사하는 아버님만 1000명, 형님만 800명"이란 말이 정치권에 회자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국무총리에 내정하면서
오랫동안 노동 현장을 지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 온 '현장형' 활동가. 2006년 민주노총 전남 동부지협지구 조지국장 신분으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조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때문에 전남 동부권 일대 노동계에서는 전설로 회자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대학에 입학한 뒤 미 문화원 점거 투쟁으로 구속된 뒤 결국 제적됐다. 이후 울산과 광주 등지의 대기업 공장 하청업체 노동자로 취업해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정치는 1997년 군 제대와 함께 당시 대통령 선거에 '국민승리 21' 후보로 출마한 현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선거를 도우면서 입문했다. 이후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하자 광주시지부 조직국장을 맡았다. 김 당선자는 홈페이지에 "열여덟, 김구선생을 통해 처음 우리 역사의 비틀림을 인식했고, 스물 둘, 광주학살의 진실을 알고 일신과 가문의 영광을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고, 스물 넷, 그는 노동자가 되었다"라고 자신의 약력을 설명했다. 이어 "서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