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커지는 논란, 해법은?
세월호가 침몰한지 110일이 지났다. 그러나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94명의 희생자와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이 있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여야는 7일 극적으로 특별법에 합의했으나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110일이 지났다. 그러나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94명의 희생자와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이 있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여야는 7일 극적으로 특별법에 합의했으나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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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우린 더 아픈 날인데. 좋은 일의 100일이랑 또 다르잖아요. 100일 떠들썩하게 하고 가면 우린 또 똑같은 날을 맞이하는데, '다음날'. 100일이나 101일이나 뭐가 달라요. 100일? 상상도 못 했죠. 근데 우린 여기서 100일을 똑같이 살고 있잖아. 그리고 가족을 찾을 때까지는 또 똑같은 날들이 반복될 거고."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하루 앞둔 23일, 진도는 여전했다. 텅 빈 체육관 매트 위엔 여전히 몇몇 가족들의 묵은 짐과 주인 잃은 이불이 쌓여있다. 한산해진 팽목항 조립식 주택은 세 가족이 지키고 있다. 방파제 위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 리본은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목탁소리와 찬송가 소리마저 그대로다. 진도의 시계는 4월16일 멈췄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와 광화문에서의 단식 농성과 도보행진, 여야 정쟁은 진도 밖 먼 얘기다. 이곳은 오로지 '내 가족을 찾는' 싸움이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다. ◇참사 100일째 가족 찾으러 바지선에
△2014년 4월15일 = 오후 9시. 세월호 승무원·승객 등 476명 태우고 인천항 출발(안개로 2시간여 연착) △4월16일 = 오전 08시 52분. 단원고 학생 최덕하(사망)군 전남소방본부 상황실에 침몰상황 첫 신고 △4월16일 = 해경, 구조 174명 실종 284명 사망 6명 △4월17일 = 오후 01시30분 박근혜 대통령 현장 방문 구조 독려 △4월18일 = 오후 01시03분 세월호, 수면 아래로 완전 침몰 △4월 18일 =오후 03시38분 잠수사 선체 2층 화물칸 문 열고 선체 첫 진입 △4월19일 = 오전 2시20분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3명 구속영장 발부 △4월20일 = 합동구조팀 선내 첫 진입 △4월20일 = 세월호 가족, 청와대 항의방문 행군…경찰 저지에 막혀 △4월21일 = 인천지검, 세월호 선사·선주 특별수사팀 가동 △4월21일 = 세월호 선내 3·4층서 시신 대수 발견…사망자 87명 △4월22일 = 사망자 100명 넘어서 △4월23일 = 검찰, 청해진해운 관계
세월호 참사,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 고양 종합버스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광주 소방헬기 추락. 세월호 사고이후 석달동안 발생한 대형 사고들이다. 지난 22일에는 태백선에서 여객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해 1명이 사망하고 91명 중경상을 입었다. 위에 열거한 사고에서만 사망자 329명· 부상자 601명· 실종자 10명이 발생했다. 우리사회를 보여주는 안전지표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맞았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는 대형 참사들이 끊이지 않고있다. 전문가들은 '사고 예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불감증'에 매몰된 '사람'들이 사고예방 시스템 작동을 멈춰 세운 전형적인 '인재'였다. 세월호는 출항 전 운항관리규정을 허위로 작성했다. 이를 확인해야할 운항관리사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승인했다 운항관리사를 채용해 관리하는 한국해운조합은 선사 대표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리하게 증축공사를 하며 세월호 복원력에는 문제가
세월호 침몰 당시 배에 남아 여러명의 학생들을 구한 생존자 김동수씨(49)가 법정에서 "끝까지 (학생들의)자리를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며 유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김씨는 사고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증언하며 유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23일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의 심리로 열린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씨는 "고2인 제 딸이 이렇게 되면 누가 우리 딸을 구할까하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아무 생각없이 구조활동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화물 기사로 세월호에 승선한 김씨는 사고 직후 스스로 구명조끼를 입은 뒤 탈출에 어려움을 겪던 학생들을 구조하고 나섰다. 학생들이 찍은 동영상 속에서 그는 소방호스로 자신의 몸을 감은 뒤 학생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김씨는 갑판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여학생들을 위해 커튼과 수도 호스를 내려주며 학생들을 끌어올렸다. 그는 구조 당시 주변에 선원이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마지막까지 구조작업
우리가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나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영원히 새기겠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고 마음속으로 새기겠습니다..." "100일 ~잊지 않고 계속 이어온 시간들..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네이버에 57만건, 다음에서 28만건. 지난 100일간 80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게시판에는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며 슬픔을 함께하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후 일주일간은 네티즌은 추모조차 두려워했다.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구호를 걸고 사람들은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바꿔달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무사귀한을 염원했다. 대학생 연합동아리 'ALT'의 제안으로 시작된 노란 리본의 물결은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으로 번졌고, 이내 온라인의 노란 리본은 거리로 번져갔다. 하지만 시민들과 유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사고 발생 후 생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희생자들이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나와 가족의
세월호 사고 이후 방송사들은 재난보도는 물론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방송사 기자들은 모든 언론사 기자들을 대표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현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컸다. KBS 젊은 기자들이 낸 '반성합니다'라는 성명서는 기자들의 심정을 대표한 예일 뿐이다. KBS는 세월호 사고 보도 과정에서 공영방송이자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직면했다. 보도국장의 실언이 키운 논란은 길환영 KBS 사장의 해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KBS는 공영방송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내부 수습도 끝나지 않았다. KBS 이사회는 조대현 전 KBS미디어 사장을 KBS 사장 후보자로 임명제청했지만 아직 박근혜 대통령은 임명하지 않은 상태다.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방송사의 문제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무더기 제재에서도 엿볼 수 있다. 2기 방심위가 MBC의 사망보험
"부모니까… 내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만 알고 싶은 건데… 그러려면 수사권, 기소권이 필요하고. 그것도 안 되나." 21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 세종로 광화문 광장. 세월호 유가족 3명은 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10m, 세로 5m 가량의 천막과 비닐 바람막이에 의지한 채 거리에서 밤을 보냈다. 물과 소금, 천막 내 스티로폼 소재 깔개, 여름용 담요. 그야말로 '생존'하고 있었다. 단식 중인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수척해진 얼굴로 시민들을 맞았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을 얘기하는 그의 눈빛은 또렷했다. "여든 야든 양쪽 다 못 믿겠어요. 한쪽은 보상만 얘기하지, 다른 쪽은 뜬금없이 의사자를 언급하고. 유가족들은 의사자 얘기를 한 적이 없어. 사람들이 오해하는 거예요." 그는 일각에서 세월호 유족들이 단원고 학생들의 특례입학과 의사자 지정을 요구한다고 오해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이 제시한 특별법안에는 단원고 학생들의 특례입학이나 의사
세월호 참사는 기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꽁꽁 얼어버린 소비 심리로 인해 극심한 내수 침체를 겪었고 각종 기념일 행사도 그냥 조용히 넘기거나 크게 축소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았다. 하지만 ‘안전경영’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 산업현장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이어지면서 기업들도 안전대책을 강화하고 있던 터라 더욱 그렇다. 기업들의 안전경영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전경영, 총수·최고경영자 직접 나선다 “삼성의 사업장은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곳이 돼야 한다” “기본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할 것이다” “100에서 1을 빼면 99가 아닌 0이다” 올 들어 ‘안전경영’을 당부하는 총수와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새해 첫 행사에서 올해 화두를 ‘안전경영’으로 제시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 역시 세월호 참사 직후 각 계열사 CE
'편하게 쉬어라. 너희 몫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게.' '엄마, 아빠, 동생 잘 지켜봐 줄 거지?' 2차선 도로 옆 화단에 놓인 네모난 나무판자 위에는 검은 글씨로 하늘에 간 아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빽빽이 적혀있었다. 길을 걷다 만난 카페에는 희생자 고(故) 박예슬 양(17)의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모든 일을 잊은 듯 차분해 보이는 도시 안산에서 세월호의 흔적은 이렇게 '툭' 하고 한 번씩 튀어나왔다. 세월호 침몰 100일을 눈앞에 둔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일대는 여전히 '세월호'를 떠나보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공공기관의 건물 외벽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내용이 플래카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이제는 많이 차분해졌는데요, 그래도 다들 잊지는 못하고 항상 생각에 품고 있는 것 같아요." 방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단원중학교 3학년 김모양(15)은 이렇게 말했다. 동네가 작아 희생된 언니 오빠들 중에는 아는 사람도 많았다. 김양은 "처음에는 학교
"아픔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다고 공장을 멈출 수는 없고…" 세월호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이달 22일. 서울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여를 달려 안산 반월산업단지가 있는 안산역을 찾았다. 반월산업단지는 이번 참사로 수백여 학생들을 잃은 단원고로부터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희생된 학생들 부모 상당수가 반월산업단지에 입주한 업체들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10시쯤 도착한 안산역 플랫폼에서 20여분을 머물며 시민들의 모습을 살폈다. 그들은 조용함 속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여전히 아픔이 남아있는 듯 했다. 다만 노란리본(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한 표식)을 착용한 시민은 보이지 않았다. 안산역에서 근무하는 김창호 한국철도공사 과장은 "노란리본을 착용한 승객들을 근래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안산시민들은 오히려 서울과 수원 등 인근지역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으로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
세월호 참사의 비극이 시작된 지 어느덧 100일.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무고한 300여명의 생명이 사회의 무능과 적폐로 희생당했다.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존재는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번 참사를 기억하고 제2, 제3의 비극을 막기 위한 노력은 국회 내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비극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이를 도려내 보완하려는 노력이다. 학교 내 안전교육 강화 등 안전 입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 단일안 마련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이어서 상당수 법안들은 계류된 채 논의 순서를 기다리는 실정. 세월호 법안들은 4·16참사 후 그달 21일부터 본격 발의되기 시작했다. 5월27일 발표된 참여연대의 '세월호 입법' 보고서에 따르면 4월21일~5월23일 33일간 총 발의 법안 501건중 100건이 '세월호' 법안이었다. 그중 안전관리 및 교육 법안(41건)과 선박 등 해난 사고 법안(29건) 등은 70%를 차지했다. 이중 법률 공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