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 재계, 국민 각계의 추모와 장례위원회 구성, 통합과 화합의 의미를 조명하며 YS의 업적과 시대적 의미를 되새깁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 재계, 국민 각계의 추모와 장례위원회 구성, 통합과 화합의 의미를 조명하며 YS의 업적과 시대적 의미를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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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23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세종시 수정안 관철을 수차례 격려받은 과거 인연을 소개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조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총리할때 세종시 개선안(수정안)이 꼭 관철되도록 하라고 격려 하셨는데 못해서 안타까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인 관계는 별로 없다. 총리 시절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몇번 뵀다"며 "그 때마다 꼭 관철시켜야 한다고 격려해주셨는데 성공하지 못한 아타까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 전 대통령이 안 계셨다면 한국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었겠나. (김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며 "더 사셨으면 좋았었을텐데. 우리나라가 더 발전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현 야권성향 지지자들이 가장 크게 아쉬워하는 대목은 '3당합당'과 그로 인한 '지역주의 고착화'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DJ의 평민당에 패해 제1야당을 내주면서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YS는 활로를 '3당합당'에서 찾았다. 수 십년간 야권 인사로 활동해 온 YS가 1990년 1월 군사정권의 후계로 평가받던 노태우 대통령과 박정희 정권 2인자였던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합당을 한다는 소식은 당시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특히 야권 성향의 지지자들은 경악했다.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은 곧 '민주자유당'을 만들어 합당했다. YS는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노무현, 이기택 등 일부 세력은 이탈하며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속칭 '꼬마 민주당'으로 불린 '민주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YS와 DJ라는 정치 거물이 둘 다 야당 지도자로 영호남을 대표했을 때에 비해, YS가 여권에
날은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렸지만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을 향한 조문행렬은 끊기지 않았다. 22일 밤이 깊도록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정치 거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날만 3200명이 넘는 조문객이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것은 'YS키즈'인 상도동계 정치인들이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새벽부터 조문을 왔고,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드나들며 정치권에 입문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며 상주를 자처했다. 이후 '마지막 3김(金)'이 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명박 전 대통령,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황교안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등도 서둘러 빈소를 향했다. 저녁에 접어들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심상정 정의당 대표, 한승수 전 국무총리 뿐만 아니라 이재오 의원,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등 새누리당 의원들도 대거 빈소에 모습을 보
22일 68번째 생일을 맞은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은 자신을 정계에 발탁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칩거 중인 강진 토굴에서 접했다. 손 전 대표가 토굴을 나와 김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서울로 향하던 중 부인인 이유경 여사가 넌지시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당신 생일에 돌아가셨으니 좋은 곳 갔을텐데 당신 복 많이 받을 거요. 참 좋은 분을 우리가 떠나보내는데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보내 드려야 될 것 같아요." 이날 저녁 비에 젖은 서울에 도착해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빈소 앞의 기자들과 마주한 손 전 대표는 이 같이 부인의 말을 소개했다. '정치거목'을 떠나보낸 슬픔을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하는 모양새였다. 손 전 대표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손 전 고문은 조문을 마친 뒤 내빈실에 들어가 옛 동료 의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선 한 동안 말없이 소주를 마시며 착잡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손 전 상임고문은 야권 인사 중에서 특히 김 전 대통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22일 서거한 김영상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이 땅에서 군부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정치의 문을 활짝 연 분"이라며 "김 전 대통령의 치적은 역사적으로 반드시 재조명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전라남도 강진에 위치한 토담집에서 칩거 중인 손 전 고문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전해진 이후 오후들어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향했다. 손 전 고문은 김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목소리가 떨리고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감정이 북받친 상태였다. 손 전 고문은 "오늘 우리는 이 땅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 한 분을 잃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나라 정치의 커다란 한 획을 그으신 분"이라며 "아마 대한민국의 현대민주주의 역사는 김영삼 정부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부정부패와 군부통치의 폐습을 격파하고자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크게 휘둘렀다"며 "김영삼 대통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과거를 회고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정 이사장은 "저희 아버님(정주영 명예회장)하고 김영삼 대통령하고 개인적으로 친했었다"며 "좋은 관계를 끝까지 계속 하도록 제가 잘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김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동작구에서 국회의원을 2번 했는데 지역구의 큰 어른이셨다"며 "배드민턴할 때 자주 뵙고 상도동 댁에 가서 좋은 말씀 많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2002년 월드컵 때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고 무궁화 훈장도 수여해주셨다"며 "개인적으로 김영삼 대통령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2년전 연말에 병원에 계실 때 대통령께서는 여러 가지 장치 때문에 말씀을 못하셨다. 그때처럼 눈빛이 강하면서 말씀을 하고 싶어하던 적이 없었다. 눈빛으로 말씀하셨다"며 "저는 아직 더 건강하실줄 알았는데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슬픔을 금할 길 없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장례위원회의 윤곽이 드러났다. 정부는 22일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었고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했다. 이날 작성된 김 전 대통령 국가장 장례위원회 구성범위(안)에 따르면 장례위원장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맞는다. 부위원장은 6명으로 국회 부의장(2명), 대법원 선임대법관, 헌법재판소 수석헌법재판관, 감사원장, 경상남도도지사가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고문은 60명 정도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전직 대통령과 전현직 3부요인, 현직 헌법기관장(헌재·선관위·민주평통), 전직 중앙선관위원장, 현직 주요정당 대표 및 광복회장으로 구성된다. UN사무총장, 종교계 대표, 친지대표 등도 고문으로 장례위원회에 참여한다. 집행위원장은 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이 맡고, 집행위원으로는 기획재정부장관·외교부장관·국방부장관·문화체육관광부장관·경찰청장이 나선다. 장례위원에는 현직 행정부 장·차관 128명, 각종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폭압적인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세우는데 고인이 크게 헌신했다"며 애도했다. 심 대표는 이날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짊어진 고인에 대해 성급한 공과의 말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심 대표는 "온 국민의 애도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서거한 가운데 김 전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인연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이 회장은 1993년 취임 초 다른 재계 인사보다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해 8월 이 회장을 독대했는데, 재계인사 중 최초였다. 같은 해 김 전 대통령은 이 회장을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 종신 명예회장은 회고록에서 김 전 대통령이 당시 거론됐던 후보들를 제치고 이 회장을 IOC 위원으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삼성의 자동차 사업을 승인해 준 것도 김 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과 이 회장의 관계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이 회장이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현지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발언한 것이 발단이 돼 균열이 생겼다. 김 전 대통령은 방미 수행단 기업인 명단에서 이건희 회장을 빼 버렸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안양옥)는 "전국 50만 교육자와 함께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한국교총은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시절 추진된 5.31 교육개혁은 대한민국 교육체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현재도 그 공과(功過)에 대한 교육계의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고 돌이켜봤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현재의 교육 5법 체제(교육기본법,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평생교육법)를 완성하는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당시 교총 등 교육계의 요구인 '교육재정 GDP 대비 5% 확보'를 1992년 대통령 공약으로 처음으로 채택해 예산편성까지 하는 등 교육재정 확충 공약을 이행했다"고 업적을 평가했다. 한국교총은 "중학교 의무교육 확대 및 교육여건 개선 등 이 나라 교육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기신 대통령으로 기억한다"며 "문민정부 수립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한 획을 그으시고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가장 뼈 아픈 날을 꼽으라면 1997년 11월22일일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날 오전 10시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된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 위에 섰다. 그는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우리경제는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로 시작된 담화문은 국민 모두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남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시급한 외환확보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 체제를 활용하겠다"는 말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김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IMF의 구제금융 신청이다. 1997년 초부터 불거진 대기업의 연쇄 부도로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당시로선 낯설었던 IMF로부터 구제금융까지 받아야 했다. 199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축제 분위기였던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를 초
22일 오전 9시10분.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 골목길에 태극기 조기가 내걸렸다. 이곳 주민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없이 대문 앞에 조기를 걸고는 이내 집으로 들어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의 맞은편 집이다. 애도의 뜻으로 이웃이 내건 국기가 YS의 서거를 상징하는 듯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날 0시22분 서울대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아침나절 상도동 자택 주변은 적막했다. 인적은 드물었다. 퍼스트레이디(영부인)였던 손명순 여사가 집에 있다는 소식에 취재진, 경호인력들만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까지 이어진 한밤의 추위, 사저를 지키는 경찰의 긴장된 표정은 적막감을 더했다. 무엇보다 '상도동계'란 정치용어를 낳는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공간의 주인공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컸다. 상도동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켜본 역사의 현장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79년 외신인터뷰에서 미국을 향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철회를 요구했고 그 결과 신민당 총재직 박탈·국회의원 제명과 함께 이곳에 가택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