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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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3월 미국 테네시 주(州)의회가 '공립학교에서 인간이 신의 피조물임을 부인하거나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어떤 이론도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반(反)진화론법', 일명 '버틀러법'을 통과시킨다. 존 W. 버틀러 세계기독교근본주의협회 테네시 지부회장이 주 의회에 로비를 펼친 결과였다. 버틀리법이 통과되자마자 생물교사 겸 축구 코치였던 존 토머스 스콥스는 법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학교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쳤다. 그는 곧장 버틀러법 위반 혐의로 기소당했고, 주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원숭이 재판'으로 이름 붙여진 재판이 그해 7월 10일 시작됐고, 국내외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재판이 단순한 범법 행위를 다뤘다기보단 기독교 원리주의자와 진화론을 옹호하는 근대주의자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미국 전역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주민 1800명의 작은 마을인 테네시 주 테이턴엔 5000여명이 몰려들었고, 대서양 횡단 케이블의 전보 사용량도 평소보다 두
1957년 10월 소련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뒤 시작된 미국·소련 간 우주진출 경쟁은 1960년대 절정에 달했다. 지구궤도로 사람을 보내는데 성공한 두 나라에게 남은 목표는 인류를 달로 보내는 것이었다. 1969년 7월16일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아폴로 11호를 탑재한 새턴V 로켓이 발사됐다. 아폴로 11호는 아폴로 계획의 다섯 번째 유인 우주비행이면서 세 번째 유인 달 탐사 시도였다. 닐 암스트롱이 선장을 맡았고 마이클 콜린스와 버즈 올드린이 함께 비행했다. 아폴로 11호 발사를 보기 위해 10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였고, 텔레비전을 통해 7억명 이상이 지켜봤다. 새턴V 로켓은 발사 12분 후 지구 궤도에 진입하고 지구를 한 바퀴 반 돌고 난 후 달로 가는 궤도에 진입했다. 로켓과 분리된 아폴로 11호는 발사 3일 만에 달 뒤쪽에 도착했고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달 착륙선 이글호에 옮겨탄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47년 전 오늘(1969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샘물교회 청년회 신도 등 20명은 2007년 7월13일 단기선교와 봉사 활동을 할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다. 다음날 입국한 이들은 현지에서 안내와 통역을 해줄 3명의 선교사와 합류한 뒤 버스를 이용해 남부지역인 칸다하르로 향할 예정이었다. 칸다하르 힐라 병원과 은혜샘 유치원에서 귀국 전까지 체류하려던 이들은 9년 전 오늘(2007년 7월19일) 카불~칸다하르간 고속도로상에서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된다. 탈레반은 납치 다음날 대변인을 통해 아프간 주둔 한국군 철수를 요구하며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와 협상했지만 실패하자 한국정부와 직접 대화를 원했고, 21일에는 탈레반 포로와 한국인 인질을 맞교환하자고 요구했다. 납치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였다. 탈레반은 몇 시간, 하루 단위로 협상 시한을 연장하면서 인질 살해를 계속해서 언급했다. 결국 탈레반은 납치 7일째인 25일 선교단을 이끌었던 배형규 목사를 살
루마니아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는 14세의 나이로 1976년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에 출전한다. 코마네치는 한 해 전 치러졌던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마루 종목을 제외한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면서 올림픽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다. 40년 전 오늘(1976년 7월 18일)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장, 키 153cm 몸무게 39kg 가냘픈 체구의 코마네치가 2단 평행봉 앞에 섰다. 1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고난이도의 기술이 실수없이 이어졌다. 그가 마지막 공중 연기를 마치고 흔들림없이 착지하자 경기장의 관중들은 넋을 잃은 채 기립박수를 보냈다. 심사위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고, 전광판에 코마네치의 점수가 떴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1.00. 경기장의 모든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1.00의 점수에 화가 난 코치가 항의하려 하자 한 심사위원이 열 손가락을 펴며 소리쳤다. "1점이 아니라 10점입니다. 만점입니다." 관중들이 다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기
"디즈니랜드에선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나이를 잊을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젊음을 되살릴 수 있다."(월트 디즈니) 만화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는 어느 날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의 작은 놀이공원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놀이 기구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고 지저분하게 버려진 쓰레기 때문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실망한 디즈니는 직접 테마파크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키마우스와 도널드 덕 등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동화 속 궁전이 그대로 재현된 곳. TV 속 꿈과 환상의 나라인 디즈니랜드가 현실로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디즈니랜드는 완벽한 세계여야만 했다. 이 공간에서 만큼은 남녀노소 누구나 현실의 어려움을 잊을 수 있고 환상의 세계에 빠질 수 있어야 했다. 놀이 시설과 건물들은 물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놀이공원 개장 전 '디즈니대학'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매표원에서부터 안내원,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넌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안왔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새끼야, 돈도 안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 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신창원 907일의 고백 중) 1967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신창원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간암을 앓고 있던 어머니를 잃었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2학년때 중퇴 했고 이후 방황이 시작됐다. 신창원은 그의 나이 고작 15살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출소 후 서울로 올라와 청량리역 주변 유흥가에서 음식점 배달원 등을 전전했지만 또다시 절도를 저질렀다. 몇 차례 더 교도소를 들락날락한 그는 점점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1989년 공범 4명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모씨 집에 침입한 그는 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만다.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신창원은 1997년 부산교도
가수 싸이는 2010년 당시 소속사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 이상 자신의 노래를 발표할 수 없게 되자 국내 대형 기획사인 YG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한다. 그 해 발매한 5집 'Right Now'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싸이는 아이돌 그룹 언타이틀 출신 작곡가 유건형과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갔고, 2012년 7월 12일 YG 엔터테인먼트 공식 블로그를 통해 신곡 티저가 공개된다. 1차 티저엔 현아, 유재석, 노홍철이 등장하면서 국내팬들의 기대를 높이더니, 이튿날엔 싸이와 유재석이 댄스 배틀을 벌이는 두 번째 티저 영상으로 정식발매를 예고했다. 4년 전 오늘(2012년 7월 15일) 강남스타일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싸이의 정규앨범 6집 '싸이6甲 Part 1'이 발매된다. 발매와 동시에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옵,옵,옵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는 가사와 함께 '말춤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내를 들썩이게 했다. 놀이터, 사우나, 승마장, 주차장, 관광버스,
1905년 11월, 일제 강압 속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이에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린 뒤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특사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으로 정해졌다. 그해 4월 전 평리원 검사였던 이준에게 고종의 신임장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내는 친서가 전달됐다. 이준은 36세에 법관양성소를 졸업해 한성재판소 검사보가 됐는데, 검사 5년차에 탐관오리였던 이하영 법무대신을 탄핵하면서 '강직한 검사'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는 고종의 밀서를 들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을 만난 뒤 러시아 횡단철도를 이용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전 러시아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과 합류한다. 고국을 떠난 지 두 달여 만인 6월 25일 그는 헤이그에 도착한다. 하지만 만국평화회의는 이미 열흘 전에 시작했고, 이들은 초청
1904년 창립된 국제축구연맹(FIFA)은 축구를 전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빅 이벤트'가 필요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좌지우지하는 올림픽과는 별개로 국가대항 축구 대회를 만들기 위해 '월드컵'을 개최하기로 한다. 1924년 파리올림픽 축구 결승전에 4만명이 넘는 관중이 몰리면서 축구의 인기와 성장 가능성은 이미 입증된 상황. 초대 대회 개최지엔 '올림픽 축구 최강팀' 우루과이와 '축구 종가' 잉글랜드 등이 거론됐다. 1930년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월드컵 개최에 욕심을 냈던 우루과이는 참가국들의 경비를 모두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면서 제 1회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다. 대회명은 월드컵이었지만 현재와 같은 대륙별 지역예선은 없었다. 본선 참가팀도 13개국에 불과했다. 당시만해도 비행기가 아닌 배로 바다를 건너야했던 탓에 남미 국가를 제외한 타 대륙 국가들이 대회 참가를 꺼렸다. 참가팀 13개국 가운데 남미가 일곱 팀이었다. 여기에 유럽에서 네 팀, 북미에서
"꿈의 나라 모험의 세계로 여기는 ○○월드." 1990년대 이곳을 방문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법한 테마송이다.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테마파크로 꼽히는 롯데월드 어드벤쳐 얘기다. 롯데월드 어드벤쳐는 롯데그룹의 '도심 속 또 하나의 도시' 프로젝트에서부터 시작됐다. 테마파크를 비롯해 백화점·마트·호텔·스포츠센터 등 여가생활을 한 번에 즐기는 문화를 도심에 만들기 위한 취지였다. 당초 롯데월드는 미국 디즈니랜드 등 해외 유명 테마파크처럼 실외공원으로 계획됐다. 1980년대 후반 당시엔 잠실 일대가 현재처럼 복잡하지도 않았고 테마파크가 실내에 있었던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일각에서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테마파크를 만들어보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계획이 바뀐다. 당시 실내 테마파크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가 됐고, 계획은 현실이 된다. 27년 전 오늘(1989년 7월 12일)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 어드벤쳐가 개장한 것. 개장
"남은 3개 봉도 안전하게 등정해 대한민국 여성의 기상을 전 세계에 떨치겠습니다." 2009년 7월11일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가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낭가파르밧(8126m)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이를 앞다퉈 보도했다. 고씨가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목표로 한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 완등을 위해 남은 건 단 3개 봉. 당시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은 한국인 3명을 포함한 14명뿐이었다. 그마저도 모두 남성 산악인. 고씨는 '14좌를 완등한 세계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내딛었다. 타고난 산악인인 고씨는 사실 13년간 농림부 소속으로 일한 공무원 출신이었다. 1990년대 초 우연한 기회에 스포츠 클라이밍을 배우기 시작했고 1997년에는 아예 공무원 생활을 접고 프랑스로 등반 유학길을 오르면서 전문 클라이머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2003년까지 스포츠 클라이밍 아시아선수권을 6연패할 정도로 상당한 실력자였다. 고
'우주에서 길을 잃어 지구에 잘못 태어난 외계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으로 '전기'(電氣)의 역사를 새로 쓴 한 과학자를 표현한 단어다. 이 남자는 현대 전기·전력 생산 시스템 및 장거리 송전·통신 등의 토대인 전력 교류법 '다상 방식'(polyphase system)을 발명했다. 그는 전 세계 전기 구동의 95%를 차지하는 '비동기 전동기'(asynchronous motor)를 개발하기도 했다. 현대 과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끈 발명과 연구에 평생을 헌신한 이 사람은 바로 전설적인 전기 공학자이자 과학자인 '니콜라 테슬라'다. 160년 전 오늘(1856년 7월 10일)은 테슬라가 태어난 날이다. 세르비아 스미즈란 지역(현재 크로아티아) 출신인 그는 성직자였던 아버지보단 가재도구나 농사도구 등을 직접 만들어 쓰던 재주 좋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덕분에 테슬라는 다섯 살 때부터 발명하며 자랐다. 고지식한 성직자였던 아버지도 아들이 발명한 '살아있는 열여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