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


경기도 성남시 분당샘물교회 청년회 신도 등 20명은 2007년 7월13일 단기선교와 봉사 활동을 할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다. 다음날 입국한 이들은 현지에서 안내와 통역을 해줄 3명의 선교사와 합류한 뒤 버스를 이용해 남부지역인 칸다하르로 향할 예정이었다.
칸다하르 힐라 병원과 은혜샘 유치원에서 귀국 전까지 체류하려던 이들은 9년 전 오늘(2007년 7월19일) 카불~칸다하르간 고속도로상에서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된다.
탈레반은 납치 다음날 대변인을 통해 아프간 주둔 한국군 철수를 요구하며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와 협상했지만 실패하자 한국정부와 직접 대화를 원했고, 21일에는 탈레반 포로와 한국인 인질을 맞교환하자고 요구했다. 납치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였다.
탈레반은 몇 시간, 하루 단위로 협상 시한을 연장하면서 인질 살해를 계속해서 언급했다. 결국 탈레반은 납치 7일째인 25일 선교단을 이끌었던 배형규 목사를 살해했다. 이후로도 탈레반은 수차례 협상 마감시한을 연장하다가 30일 심성민씨를 살해했다.
협상을 서둘러 진행하려던 우리 정부와는 달리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테러세력에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결국 8월10일 한국 협상단이 탈레반 대표와 첫 대면 협상을 시작하면서 인질 석방과 사태 해결이 진전양상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탈레반과 협상을 통해 인질 석방의 대가로 △한국군의 연내 철수 △아프간 체류 민간인의 8월 내 철수 △기독교 선교단의 아프간 입국 불허 등을 구두로 약속했다. 탈레반은 탈레반 죄수석방 요구를 접고 한국인 인질들이 아프간을 떠날 때까지 공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결국 12일 건강상태가 안좋은 여성 인질 2명이 석방됐고, 우리 정부는 아프간 파병 다산부대를 연내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이후 납치 42일만인 8월30일 살해당한 2명을 제외한 인질 전원이 모두 풀려나면서 사태가 일단락된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 사건을 계기로 종교단체의 '공격적인 선교활동'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졌다. 특히 샘물교회 선교단이 출국하기 직전 아프가니스탄 여행에 관한 경고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거나 칸다하르의 모스크 내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등의 행동이 알려지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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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국민 안전을 위해 분쟁지역에서의 선교·봉사활동을 금지해야 했지만 사건이 터진 후 여행금지 조치를 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2010년 7월 희생자 유족이 “정부가 재외국민 보호의무를 위반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4월 법원은 "국가는 인터넷과 언론매체 등을 통해 꾸준히 아프간의 불안한 정세와 탈레반의 테러 가능성 등을 국민에게 공표해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