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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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샤워를 하고 있다. 긴박한 배경음악과 샤워커튼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한순간 샤워커튼이 걷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에게 살해당하는 여자. 이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샤워실에서 젖은 머리로 비명을 지르는 여인의 모습은 미디어를 통해 한번쯤 봤을 것이다. 바로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의 한 장면이다. 서스펜스의 대가이자 '스릴러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앨프리드 히치콕은 1899년 영국 레이턴스톤에서 태어났다. 양계업과 과일 수입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15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항해기술을 배우기도 했지만 결국 런던대학교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한다. 1920년 영화사에 입사한 히치콕은 자막 디자인을 시작으로 미술감독, 시나리오 작가, 조감독 등의 일을 하며 차근차근 영화감독의 길을 밟아나간다. 마침내 1925년 발표한 장편영화 '프리주어 가든'으로 데뷔한다. 미술을 전공한 덕일까. 히치콕
현재 우리나라 45개 법정기념일 가운데 특정인의 생일은 단 하루다. 바로 4월28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탄신일이다. 471년 전 오늘(인종 1년·1545년 4월28일) 충무공 이순신은 서울 건천동(현재 중구 인현동)에서 부친 이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28세인 1572년(선조 5년) 훈련원 별과시험을 보던 중, 낙마해 왼쪽 정강이가 부러지는 바람에 버드나무가지로 부목을 대고 시험을 완수했지만 낙방한 일화는 널리 알려졌다. 결국 4년 뒤인 1576년 32세가 돼서야 무과에 병과로 급제해 권지훈련원봉사(훈련원 봉사 실습생)로 처음 관직에 나선다. 그는 발포진 수군만호와 조산보 만호를 거쳐 1591년 47세 나이에 정3품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된다. 충무공은 부임하자마자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무기와 군량미를 확충하고 거북선을 건조하는 등 군비를 강화했다. 한해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그는 옥포대첩, 노량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에서 전승을 거뒀다. 이어 15
"난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와도 맞서 일생 동안 투쟁해왔다.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을 품고 있다.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으며 이를 성취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종신형을 받기 전 법정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1918년 7월18일 남아공 동남부의 한 시골마을에서 템부족 추장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만델라는 추장이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사망한 뒤 템부족 왕을 후견인으로 해 교육을 받았다.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대학생활을 하던 그는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와 마찰을 빚은 뒤 정학 처분을 당하고 인생행로가 바뀐다. 만델라는 고향을 뒤로하고 무작정 요하네스버그로 상경해 새 삶을 시작한다. 그는 법률가의 꿈을 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방송통신대학인 남아공대학(
‘고군산군도(전라북도 군산시)의 물이 300리 밖으로 물러나면 이곳이 천년 도읍이 된다.’(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의 퇴조(退潮) 300리설) 1980년대 냉해로 쌀 흉작 문제가 불거지자 1987년 정부는 옥서지구와 김제·부안지구를 통합해 새만금지구로 명명하고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농지 공급 부족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991년 11월16일 새만금간척사업의 1단계 사업으로 방조제 건설이 시작됐다. 3개 지구를 통합하는 만큼 방조제 건설 중 진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새만금방조제는 길이 33.9km, 평균 높이 36m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했다.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네덜란드의 주다치 방조제(32.5km)를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방조제 내부 규모는 401㎢ 로 서울시 면적의 3분의2에 해당한다. 총 1억2300만㎥의 토석이 사용됐는데 이는 경부고속도로(418㎞)를 13m 높이로 쌓을 수 있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벨라루스 접경지역. 30년 전 오늘(1986년 4월26일) 새벽 옛 소련 영토였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호기에선 터빈발전기의 관성력 이용 실험을 하고 있었다. 실험을 위해 원자로 출력을 3분의1 정도로 낮추던 상황에서 한 직원이 실수로 원자로가 정지 상태에 이를 만큼 출력을 낮춰버렸다. 결국 원자로의 재가동이 어려운 상황까지 갔고 출력을 다시 높이기 위해 제어봉을 올리는 과정에서 원자로에 무리가 가해졌다. 이 때문에 원자로 반응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핵연료가 순간적으로 파열됐다. 문제는 실험을 위해 각종 안전시스템과 컴퓨터 자동제어시스템을 단절해 놓았던 것. 예기치 않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원전은 폭주했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두 번의 큰 폭발음과 함께 원자로가 위치한 콘크리트 건물 지붕이 날아가고 핵구름이 하늘로 치솟았다. 건물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원자로와 내부에 있던 방사성 물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역사상 최악
병역의무자 가운데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연구기관이나 산업체에서 대체복무하게 하는 '병역특례제도'가 부유층 자제들의 병역회피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강남 부유층 자녀가 군대 제대로 가면 바보',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 자녀는 대학을 다니다 특정 IT업체 2곳 중 1곳에서 산업기능요원 복무하는 게 공식'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산업체가 원할 경우 전공과 무관하게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정받을 수 있는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것. 브로커에 돈을 주면 병역을 피해 산업체나 연구기관에 위장취업이 가능한 구조에 '유전특례 무전입대'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업계에선 현역판정을 받을 시 5000만~1억원, 보충역은 2000만~3000만원 등의 가격이 매겨져 있을 정도로 산업체 부정 편입이 만연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이에 9년 전 오늘(2007년 4월25일) 검찰은 병역특례자 채용 과정에서 금품이 오가거나 실제로 근무하지 않은 등의 정황이 포착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실험동물의 희생이 있었다. 실혐동물은 다방면의 연구와 제조 교육 등을 위해 번식시키거나 포획한 야생동물들을 일컫는다. 주로 쥐나 기니피그, 토끼, 메추리, 닭, 개, 돼지, 원숭이 등이 실험도구로 활용됐다.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기까지는 5~10년. 그동안 많은 종류 실험이 진행되고 실험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죽어갔다.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매년 약 6억마리의 동물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게 실험동물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의 설명이다. 동물실험은 일부러 동물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기 위한 실험은 아니다. 하지만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라는 점과 실험이 끝나면 모두 죽어야 한다는 점 등이 비윤리적이란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마약 중독이나 암, 치매, 에이즈 등은 인간에게만 발생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동물실험을 위해 동물에게 인위적으로 질병을 감염시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은 생리·해부학적으로
1981년 '오달자의 봄'을 통해 이름을 알린 만화가 김수정은 말썽쟁이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차기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다만 김 작가가 그리려 했던 주인공 어린이는 어른에게 반항적이고 버릇없는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당시 만화 심의를 피하기 위해 인간이 아닌 존재를 찾게 되고 이미 수천만년 전에 멸종한 공룡을 선택한다. 외계인이 부여한 초능력을 얻고 빙하에 갇혀 현대로 넘어온 공룡을 의인화시켜 주인공으로 정한 것. 이 공룡의 이름은 '둘리'다. 둘리를 주인공으로 한 '아기공룡 둘리'가 33년 전 오늘(1983년 4월22일)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가 시작된다. 초록색 아기공룡인 둘리는 빙하기 때 얼음 속에 갇혀 있다가 어느 날 한강을 통해 서울로 오게 된다. 항상 혀를 반쯤 내민 어리숙한 말썽꾸러기지만 돌발 상황에선 외계인에게서 받은 초능력을 사용한다. 둘리 외에도 △만년과장인 집주인 '고길동' △고길동의 조카 '희동이' △깐따삐야별에서 온 외계인 '도우너' △서커스단에서
1983년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컴'을 선보이며 북미와 일본 게임기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닌텐도는 후속기종에 대한 고심이 빠졌다. 마땅한 아이템이 없었던 닌텐도는 결국 1980년 출시했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워치'의 차세대 기종을 만들기로 한다. 게임기 본체에 내장된 게임만 할 수 있었던 이전 휴대용 게임기와는 달리 소프트웨어를 교환하면서 여러 게임을 할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가 27년 전 오늘(1989년 4월 21일) 세상에 나온다.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 '게임보이'가 일본에서 출시된 것. 당시 컬러기술이 있음에도 배터리 사용문제로 과감히 흑백화면을 선택한 게임보이는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으로 판매되면서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만 출시 2주만에 30만대가 팔리고, 석 달 뒤 상륙한 북미에선 그해 100만대 이상을 판매해 23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에선 1991년 정식 발매가 됐지만 이미 용산전자상가와 부산 보따리상을 통해 퍼지면서 청소년들의
2008년 7월14일, 다음 아고라 경제게시판에 한 논객의 글이 게시됐다. 하반기에 물가가 오르니 생필품 6개월치를 미리 사두고,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해 한국에도 불똥이 튈 것이라는 예측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는 이어 8월25일엔 글로벌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예측하는 글을 올렸다. 그의 말대로 3주 뒤, 리먼브러더스가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한다. 글을 작성한 논객의 필명은 '미네르바'. 제도권에서 할 수 없었던 비관적인 경제 예측을 과감히 내놓고 그 예측들이 맞아떨어지면서 시중엔 '미네르바 신드롬'이 일었다. 일부 네티즌은 그에게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당시 이명박정부의 정책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환율·부동산·주식 등에 대한 미네르바의 게시물에 네티즌과 일부 투자자는 열광했다. 이후 급격한 환율변동 사태 등의 예측도 현실화되면서 온라인에서 그에 대한 신뢰는 절정에 달았다. 네티즌 사이에선 그의 정체가 전직 은행
한가롭고 따스했던 그 해 봄,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의 서부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1906년 4월 18일 이른 아침인 5시45분, 갑자기 해안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시는 삽시간에 균열됐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하나 둘씩 무너져 내렸다. 규모 7.7~8.25의 강력한 지진이 샌프란시스코 해안가를 강타한 것이다. 지진의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건물이 붕괴되고 가스관이 파열하면서 크고 작은 화재도 이어졌다. 당시 정부 보고에 따르면 3일만에 화재 20건이 490개 시 구역의 건물 2만5000채를 붕괴시켰다. 도시의 약 80%가 파괴됐다.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사망자만 약 3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41만 인구 중 절반이 넘는 22만7000명과 30만명 사이의 사람들이 이재민이 됐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언론은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명소인 골든게이트 공원, 프레시디오, 팬핸들 그리고 잉글사이드와 노스 비치 사이의 해변이 임시 텐
"살려주세요.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2년 전 오늘(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2분 119에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최덕하군의 신고였다.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포함해 총 476명이 타고 있었다. 전날 오후 9시 청해진해운소속 6825톤급 여객선 '세월호'는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나 제주로 향한다. 이튿날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 들어선 세월호는 오전 8시49분 갑작스런 변침으로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배 안의 사람과 물건이 왼쪽으로 구르며 뒤엉켰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세월호는 최군의 최초 신고보다 3분 늦게 제주VTS에 조난 신고를 한다. 신고 내용과는 달리 세월호 선내에서는 계속해서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사고 희생을 키운 한 마디였다. 움직이지 말라는 선내 방송에 따라 승객들은 갑판으로 나오지 않았다. 9시35분 해경 123정이 도착하자 선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