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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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한다." 116년 전 오늘(1900년 10월 25일) 독도가 공식적으로 대한제국의 영토임이 공표됐다. 고종황제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반포한 것이다. 이틀 뒤 대한제국은 관보를 통해 공식발표했다. 울릉도의 이름을 '울도'로 바꾸고 군(郡)으로 격상한다는 내용의 이 칙령은 울릉도의 관할 구역을 본섬과 죽도, 석도로 정했다. 칙령에 명시된 울릉도의 부속섬 '석도'가 오늘날의 독도다. 석도는 당시 독도를 가리키던 사투리인 '독섬'(돌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죽도는 울릉도 본섬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있는 대나무가 많고 사람이 살던 '댓섬'(대나무섬)을 뜻한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대한제국의 영토 범위를 확실히 하고 행정권을 강화하려는 뜻이었다. 조선 후기 일본인들은 불법으로 울릉도에 들어와 나무를 베고 배를 만들곤 했다. 고종은 1882년 이규원을 감찰사로 임명해 울릉도의
성수대교 사고로 어수선했던 한 주였다. 사흘 전 성수대교가 무너지면서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주말동안 구조 뉴스와 사고 현장에 빠져있던 시민들은 그 다음날인 월요일, 일상으로 돌아왔다. 서울·부천·홍천 등지에서 친목 모임차 충주호와 단양 고수동굴을 관광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평온해 보였던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배에서 불이 붙으면서 또한번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2년 전인 오늘(1994년 10월 24일) 충주호 유람선 사고가 발생, 3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충주 유람선 제5호는 충북 단양읍에서 충주로 향하는 유람선이다. 1986년 7월 만들어진 이 배는 127명을 태울 수 있다. 이날 오후 4시 충주유람선 제5호는 정원을 초과한 132명을 태우고 충주로 향했다. 함께 유람선에 탄 승무원은 3명이었다.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옛 단양철교를 지나던 배 기관실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불은 순식간에 갑판과 선실로 옮겨 붙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돼 아버지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큰 일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여겨줬으면 한다. 정의를 위해 큰 일을 한 것 같아 후회는 없다."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평범한 아버지 박기서씨(당시 46세)는 20년 전 오늘(1996년 10월 23일)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으로 알려진 안두희씨(사망당시 79세)를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하며 이 같은 심경을 밝혔다. 경기 부천에 살고 있던 박씨는 이날 오전 4시 30분쯤 집을 나와 안씨가 사는 인천 중구 아파트에서 때를 기다렸다. 오전 11시30분쯤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박씨는 안으로 들어가 동거녀를 묶고 옆방에 누워있던 안씨를 나무 몽둥이로 폭행했다. 당시 중풍으로 거동조차 불편했던 안씨는 특별히 반항하지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장교였던 안씨는 1949년 6월 백범을 총으로 살해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집행정지를 받은 뒤 복귀했다. 이후 백범 암살 배후를 밝히기 위한 사회운동가 등을 피
1986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선 영호남 라이벌인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가 맞붙었다. 당시 해태는 1983년 한국시리즈 우승, 삼성은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 등 각각 한 번씩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이번 한국시리즈를 이기는 팀은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번의 우승을 하는 것이었다. 양 팀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다. 해태 홈구장인 광주무등야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해태는 국보급 투수인 선동렬을, 삼성은 진동한을 선발로 내세웠다. 선취점은 삼성이 뽑아냈다. 7회 초 삼성 공격 1사 상황. 이만수가 친 공은 좌월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김성래가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날리면서 2점을 획득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7회 말까지 무실점 호투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투수 진동한이 관중이 던진 유리병에 머리를 맞으면서 부상을 입은 것이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삼성은 투수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8회 말 마운드에 오른 김시진은 상대 김성한에게 1점을
22년 전 오늘(1994년 10월 21일) 아침 가을비가 내리는 것 빼곤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밖에 비오는 한강 대교는 운치있었다. 오전 7시40분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성수대교 10번과 11번 교각 사이 상판이 무너져내렸다. 비가 내려 천천히 다리를 지나던 16번 시내버스와 봉고·승용차 등 차량 10여대는 한강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부분 강남에서 강북으로 넘어가던 차량들이었다. 너무 순식간에게 벌어진 일이라 손 쓸 겨를도 없었다. 말 그대로 출근길 날벼락이었다. 뒤따르던 차량들은 브레이크를 밟았고 미처 멈추지 못한 승용차 몇 대는 뒤이어 떨어졌다. 브레이크 파열음과 자동차 클랙슨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뒤섞이면서 일대는 혼란에 빠졌다. 약 50m 높이에서 떨어진 차량들은 납작하게 일그러졌고 무너진 교각 상판에는 피가 흥건했다. 이 사고로 32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당시 강남 거주 학생이 강북의 학교로 배정되는 경우가 있어 희생자 중에는 중
42년 간 이어진 '피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5년 전 오늘(2011년 10월 20일) 시민군에 쫓기던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69세 나이로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최후를 맞았다. 독재자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2011년 3월 본격 시작된 리비아 혁명(내전)에서 정부군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시민군의 기세에 무너졌다. 시민군은 그해 8월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했고 카다피의 고향까지 진격해 끝내 사살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당시 하수구에 숨어있던 카다피는 시민군과 맞닥뜨린 후 '쏘지마'라고 두 번 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를 부흥시킨 '아랍의 체 게바라'에서 독재자로 돌아선 카다피의 마지막은 참담했다. 당시 리비아 국민들은 카다피에 지칠 만큼 지쳐있었다. 그는 1985년 로마·빈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270여명이 탑승한 미국 팬암기를 폭파하는 등 테러를 저지르며 악명을 떨쳤다. 부정축재에도 일가견이 있는 카다피는 1500억 달러가량(약
18년 전 오늘(1998년 10월19일) 한국 자동차 산업에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의 공개입찰 경쟁자 중 최종낙찰자로 결정되면서 대한민국 자동차업계 '공룡기업'이 탄생한 것. 국내 최초로 가솔린 엔진을 생산한 기아자동차는 1944년 12월11일 '경성정공'이란 이름으로 설립됐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하고, 1952년 2월 회사 이름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다. (당시 자전거 사업부는 1979년 '삼천리자전거'로 분사 후 1985년 기아그룹에서 독립했다.) 기아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976년 10월 아시아자동차공업을 인수하고 1980년대에는 소형승합차 봉고 코치는 ‘봉고 신화’를 창조하며 기아산업의 주력 차종이 됐다. 이후 승합차 베스타, 소형승용차 프라이드 등을 출시하며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 선두를 차지했고 1990년 3월 '기아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했다. 기아그룹은 1997년 기아차를 중심으로 28개 계열사에 직원
149년 전 오늘(1867년 10월 18일) 알래스카에 미국 국기가 게양됐다. 그날 러시아는 '애물단지'였던 알래스카를 공식적으로 미국에 넘겼다. 미국 입장에서는 '최고의 부동산 투자'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반면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헐값에 넘긴 것에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는 크림전쟁(1853~1856년) 패배로 국고가 바닥나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통치가 어렵고 관리 비용도 많이 드는 알래스카를 안고 있을 여력이 없었다. 영국이 무력으로 알래스카를 점령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영토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결국 러시아 황제 차르 2세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가 알래스카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슈어드가 서명한 알래스카 매입 금액은 총 720만달러(약 80억원)였다. 남한 면적의 17배 정도에 달하는 땅(153만 700㎢)을 1에이커당 2센트 정도에 사들이게 된 것이다. 수어드가 이같은 '알래
옷차림이 누추하다며 나이트클럽 입장을 거부당하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손님들이 빠져나가기도 전에 종업원들이 꽁지를 뺐고 손님들은 유독가스를 특수효과로 오인했다. 어처구니없는 화재는 참사가 됐다. 25년 전 오늘(1991년 10월 17일) 대구시 서구 거성회관 나이트클럽에 난 방화로 16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에 위치한 나이트 클럽 손님 100여명 중 30%가 사상된 참사였다. 당시 이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 뒤 서울 여의도에서 발생한 '여의도 질주사건'이 일어나면서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포감이 극도로 높아졌다. 여의도광장에서 사회에 불만을 품은 시각장애인이 차를 몰고 질주하면서 초등생 2명이 치어 사망하고 20여명이 다치는 사고였다. 방화의 시작은 그야말로 '별일'도 아니었다. 영농후계자 김모씨(당시 29세)는 친구 3명과 술을 마신 뒤 찾은 나이트클럽 입구에서 복장 문제로 입장을 저지당하자 실랑이를 벌였다. 그의 옷차림이 누추하다는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탄압 중지하라!” 37년 전 오늘(1979년 10월16일) 오전 10시 부산대학교 도서관 앞에 500명의 학생들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독재집권층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선언문’이 부산대학교 일대에 배포됐다. 유신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부마항쟁’의 시작이었다. 1979년 유신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적인 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야당과 재야세력의 저항이 고조됐다. YH사건으로 야당 총재 김영삼의 의원직이 박탈되고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66명이 전원 사퇴안을 제출하자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이에 유신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서울과 광주, 대구 등지에서 국지적으로 일어났다. 부산·경남지역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반대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졌다. 이 가운데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당긴 시위의 방아쇠는 시민들의 내면에 가라앉았던 투쟁심을 터뜨리는 계기가 됐다. 부산대 교내에서 시위 진영을 갖춘 학생들은 시내 중심
'쨍그랑' 유리창이 깨졌다. 가정집 창문에 얼굴을 내비친 한 사내는 그 유리창 조각 하나를 들어 자신의 목에 겨눴다. 거침없이 자신의 목에 유리로 만든 흉기를 꽂았다.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그와 대치중인 경찰로부터 요청받은 카세트테이프를 튼 라디오에선 음울하고 구슬픈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배경음악처럼 흘렀다. 이 장면은 전국민이 보는 TV로 생중계됐다. 그의 돌발행동에 경찰은 그를 향해 총을 쐈다. 총알은 그의 무릎과 배를 관통했다. 곧바로 경찰에 붙잡힌 그는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28년 전 오늘 (1988년 10월15일) 지강헌(당시 나이 35세)과 그 일당이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 교도소로 이감하던 중 탈주해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이 벌어진 날이다. 이 일당 중 한명인 강영일(당시 21세)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겨 더 유명
"저의 모든 진심과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여러분을 위해 성실히 봉사할 것을 맹세합니다." 10년 전 오늘(2006년 10월14일) 오전 4시,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제8대 유엔사무총장에 공식 선출됐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 일본의 오시마 대사의 공식 추천을 시작으로 회의 시작 5분 만에 투표 없이 회원국 대표들의 만장일치 박수(by acclamation)가 이어졌다. 1991년 9월18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이 동시에 회원국으로 가입한지 만 16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유엔의 수장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수락 연설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유엔의 3대 책무인 평화와 발전, 인권 증진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를 위한 개혁을 강조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유엔사무총장 자리에 오른 반 총장은 1944년 6월13일 충북 음성의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미군 부대에서 타임지를 구해 영어를 공부한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