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대상 '피코'
동물이나 인형을 닮은 반려 인공지능(AI) ‘피코’가 있다. 피코는 7년에 1번씩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자아 정체성이 생기면 인간을 넘어서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단 두려움 때문이다. 제타는 정든 피코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주인들을 위해 대신 해체하는 용역업체에 근무한다. 여느 때처럼 근무하던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불법 개조된 피코, 프레야를 만난다.
동물이나 인형을 닮은 반려 인공지능(AI) ‘피코’가 있다. 피코는 7년에 1번씩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자아 정체성이 생기면 인간을 넘어서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단 두려움 때문이다. 제타는 정든 피코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주인들을 위해 대신 해체하는 용역업체에 근무한다. 여느 때처럼 근무하던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불법 개조된 피코, 프레야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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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굴지의 게임기 개발 회사에서 얼마 전 출시된 가상현실 게임기는 비행기 1등석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침대는 성인 한 명이 길게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을 만큼 널찍했고, 게임을 장시간 플레이해도 피로해지지 않도록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되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플레이어는 VR 헤드기어를 쓰고 뇌파를 게임기에 연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헤드기어는 머리 전체를 감싸는 헬멧 모양으로 시각과 청각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이 특징이다. 헤드기어 내부에서 발생되는 특수한 전자신호는 끊임없이 플레이어의 뇌를 자극하여 게임 속 오감을 구현한다. 특히 게임기와 헤드기어가 서로 주고받는 강력한 신호는 뇌를 거쳐 연수까지 전달되기 때문에 신체적 움직임까지 재현해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녀의 정신세계는 스튜디오 전면에 있는 거대한 화면에 고화질로 상영될 것이다. 기술자들은 게임기에 점검용 노트북을 연결해 주파수를 확인하고 전선을 새로 교체하는 등 매우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노는 휴
게임BJ 주노, 18일 WGN개국 1주년 특집 VR(가상현실)게임 24시간 생방송 진행해 기사 입력 20XX-08-01 10:24 온라인 게임채널 WGN(월드게임네트워크)은 이달 18일 개국 1주년을 맞아 VR(가상현실)게임 24시간 생방송 특집을 마련했다고 알렸다. 특히 이번 방송은 플레이를 시작하면 24시간 안에 엔딩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는 콘셉트로 방영 전부터 시청자들의 화제를 모았다. 18일 오후 11시에 편성된 인기호러게임 ‘인사이드 오브 마인드2’-이하 IOM2-를 플레이할 인기 BJ(Broadcasting Jacky) 주노(26)는 개인 사이트 구독자 80만 명을 보유한 스타급 방송인이다. 그러나 BJ 주노는 지난 7월 초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로부터 신상과 과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아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BJ 주노는 이번 특집에 임하며 “제가 진행할 게임 ‘IOM2’는 유저의 심층 심리를 파고들어 공포의 근원을 건드리는 ‘사이코호러(ps
6 "미안하지만 처리 과정에서 자네가 부주의했던 점이 담당자의 심기를 건드렸네. 초 인공지능이 이차 종말을 유발할 수 있단 건 교육을 통해 이미 배우지 않았나?" 면접 이후 두 번째로 보는 중간 관리자는 제타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업무 과실로 인한 해고는 퇴직금도 없다. 그러나 제타는 개의치 않았다. 수중감옥으로 끌려가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다행이었다. 마이클 무어는 인공지능 불법 개조 혐의로 수중감옥에 갇힐 게 분명했다. 고작 열세 대의 피코를 처리했을 뿐인데 통장에는 돈이 두둑했다. 당분간은 일을 찾아 노동부 사이트를 들락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실업수당 신청은 잊지 않았다. 제타는 비니스트의 공연을 보고 난 다음 괌으로 짧게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해수면이 점차 하강한 덕분에 괌이 다시 뭍으로 드러났고, 경비행기가 착륙할 공항과 조그만 호텔들이 생겨났다. 물에 잠긴 지 삼십 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초 인공지능은 그렇게 세상을 바꿔 놨다. 제타는 비니스트의 공연을 보기
4. 연구소 내부로 들어가는 동안 그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프레야가 서버를 해킹한 덕분이었다. 후엠아이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제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구소에는 제타가 아니더라도 용역업체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직원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물론 제타에게도. 제타는 프레야에게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했다. 프레야는 인공지능 연구소에 있는 박사에게서 받을 물건이 있다고만 했다. 제타에게 아주 요긴하게 쓰일 물건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제타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프레야의 진실하고 아름다운 눈빛에 깜빡 넘어갔다. 인공지능이 자신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고 생각한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설마 인공지능 따윈 아니리라. 제타는 인공지능 없이도 자신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중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제타가 PDA를 통해 프레야에게 물었다. 프레야는 아직 플라스틱 끈에 묶여 있는데다
5. "제타, 물건을 찾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폐기장에서 연락이 왔다. 일이 조금 꼬였다. "지금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 그 피코, 성장제어장치가 제거됐을 거래. 사춘기를 이미 훨씬 넘어섰단 말일세! 마이클인지 뭔지 완전히 미친놈이더군. 성모가 자기 피코에게 강림했다고 믿는대. 아무튼, 자네가 전화를 받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먼. 벌써 피코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지금 당장 그쪽으로 경비를 보내겠네!" 이미 인공 숲으로 접어든 제타는 인력을 보내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담당자를 안심시켰다. 빠르게 달리면 십 분도 안 돼서 도착할 거리였다. 이제 하늘에서는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타는 씁쓸한 기분을 지우기 힘들었다. 봉투 안에 들어있던 건 비니스트의 콘서트 티켓이었다. 보컬 아멜이 인공 성대 수술을 받고 처음으로 여는 기념비적인 콘서트였다. 벌써 여든이 넘은 노가수가 전성기의 실력을 되찾았단 소문이 자자했
3. 마이클은 인공지능을 개조한 혐의로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제타는 여자를 뒷좌석에 태우고 폐기장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트렁크에 태웠겠지만, 이번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괜찮겠소?" 경찰이 홀로 폐기장으로 향하는 제타에게 물었을 때, 제타는 별 문제 없을 것이라 답했다. 플라스틱 강화 끈은 센티미터 당 일 톤의 무게를 견딘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휴대용 방전기를 사용하면 된다. 게다가 폐기장까지는 이십 분도 안 걸렸다. 인공 숲을 가로지르면 금방이다. "폐기장에 연락해서 에스코트를 요청하겠습니다.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경찰에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그러나 창문을 닫고 출발하면서는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단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는 여자에게서 나는 묘한 향기가 풍겼다. 인공지능에도 사람의 향기가 풍길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음악도 틀었다. 항상 듣던 비니스트의 앨범이었다. "노래 제목이 뭐죠?" 입을 다문 채 창밖을 바라보던
2. 사춘기에 가까워진 피코들은 변화의 시점을 섣불리 짐작하기 힘들다. 그래서 정부는 마감 기한보다 빨리 반납하는 사용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정책을 펼친다. 피코의 대여 비용을 몇 프로 감면해주는 방식인데 별 실효성은 없다. 갈수록 똑똑해지고 사랑스러워지는 피코를 누가 반납하겠는가. 그러나 그건 폭풍 전의 고요함과 같다. 메타 인지 단계로 접어든 피코는 점차 폭력 성향을 띠고 주인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서 지능청은 칠 년차에 접어든 피코를 총 삼 단계로 나누어 관리했다.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은 안전 단계다. 지능청은 시민들이 초록색 단계에 반납하길 권장한다. 노란색은 주의 단계다. 반납하라는 문자가 주기적으로 전송되고, 구청 담당자가 직접 방문해서 피코의 상태를 확인한다. 빨간색은 강제 반납 단계다. 지능청은 언제든 직원을 파견해 피코를 압수할 수 있다. 주인이 압수를 거부할 경우, 경찰력이 동원된다. 제타는 지금껏 빨간색 단계의 피코를 처리한 적은 없었다. 호출
제타가 '후엠아이'에 입사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언제나 그렇듯 용역업체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귀찮든, 더럽든, 힘들든, 뭐든 상관없다. 손 안 대고 코를 풀고 싶다면 용역업체에 맡기면 된다. 제타는 입사한 이래 열두 번째 피코를 데리러 가는 길이다. 피코는 가정마다 한 대씩 할당된 반려 인공지능의 이름이다. 인공지능 법 제 2조는 칠 년에 한 번씩 반드시 피코를 교체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제때 피코를 교체하지 않으면 전 인류에 큰 위험이 될 수 있으므로, 누구나 때가 되면 새로운 제품을 대여해야 한다. 제품은 과학기술부 산하에 있는 지능청에서 빌릴 수 있다. 모든 제품은 정부가 직접 관리하며, 사용자는 매달 세금을 내듯 사용료를 지불한다. ☞ '피코' 전체보기 규정상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는 사람을 닮아선 안 된다. 혹여 부품의 일부라도 사람을 닮은 제품을 만들면 당장 수중 감옥행이다. 수중감옥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수범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