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휩쓴 K팝, 그런데 K미술은 왜 아직?…답은 '철학'

세계를 휩쓴 K팝, 그런데 K미술은 왜 아직?…답은 '철학'

안재용 기자
2026.08.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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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O 광화문클럽] 이보름 화가 강연 '현대미술-도발과 스캔들'

이보름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PADO 광화문클럽'에서 '현대 미술-도발과 스캔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PADO
이보름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PADO 광화문클럽'에서 '현대 미술-도발과 스캔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PADO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 등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세계인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인이 체감하는 것보다 더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데 한국의 미술은 아직 이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이보름 작가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PADO 광화문클럽'에서 '현대 미술-도발과 스캔들'을 주제로 강연했다. PADO는 머니투데이가 만든 국제시사·문예매거진이다. 광화문클럽은 PADO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공론의 장으로, 국제정세와 인문·사회·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전문가 강연과 토론을 진행한다. 또 매월 '클럽데이'를 열어 참가자들이 함께 지식과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다.

선화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디자인학부 강의전담교수,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동양화에서 출발해 유화를 비롯한 현대 회화로 작품 영역을 넓혀온 이 작가는 개인전을 17회 열었으며 베이징과 도쿄, 파리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미술이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이른바 'K 문화'에 함께하지 못한 것은 작가들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서도, 기법이 뒤처져서도 아니다. 현대 미술에서 작품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 작가의 진단이다.

"그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에는 철학입니다. 우리가 우리 눈으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비싼 그림들이 1500억 원에서 3000억 원 사이입니다. 그런데 겸재 정선의 그림이 75억 원 정도예요. (이 차이의) 바탕에는 결국 철학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렇다면 현대 미술이란 무엇일까.

이 작가는 현대 미술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거꾸로 '현대 미술이 아닌 것'을 먼저 보여줬다. 왕과 귀족, 성직자의 주문에 따라 제작된 프란시스코 고야,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들이었다.

"이 그림들은 전형적으로 왕·귀족·성직자들이 '이것 그려줘' 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현대 미술은 이런 주문 제작이 아닙니다. 또 이 그림들이 현대 미술이 아닌 것은 누가 봐도 '그렇구나'하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가치의 재현을 위해, 그렇게 느낄 수 있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신이 창조한 이 세상이 가장 완벽하고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세상의 객관적 아름다움을 얼마큼 잘 표현하느냐가 현대 (미술) 이전까지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해당 작품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가 작품이 시작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 메시지는 작가에게서 나왔다기보다는 주문자인 왕, 귀족, 성직자의 뜻인 경우가 많았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가 흔히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 소개되지만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로마 가톨릭의 것이라는 얘기다. 누구도 이 작품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대 미술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변화는 화가가 왕·귀족·성직자의 의뢰를 재현하는 사람이 아닌 독립적인 개인이 되면서 시작됐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신분 질서가 흔들리고 시민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면서 화가 또한 누군가의 주문을 수행하는 장인에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창작자로 변화했다. 이 같은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위에서 현대 미술이 아닌 것으로 소개됐던 프란시스코 고야다.

"고야는 거의 귀족의 개처럼 살았어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궁정화가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결국 궁정 수석화가가 됐죠. 그렇게 명성과 부를 얻은 고야가 말년에는 병을 앓고 귀가 먹어서 퇴직을 하고 '귀머거리의 집'이라는 이름의 집에 살게 됩니다. 그 집 안 모든 벽에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요. 누구를 위해 그린 것도 아니고 주문받은 것도 아닌 그 그림들이 고야의 그림 중 가장 명작이라고 평가되는 검은 그림 시리즈예요."

여기서 현대 미술로의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다고 이 작가는 설명한다. '얼마나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렸는가'보다 '왜 이것을 그렸으며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는 질문은 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즉 현대 미술 작품에는 배경이 되는 철학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현대 미술 작품은 철학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이 작가는 강조했다.

이 작가는 그래서 현대 미술의 역사가 '스캔들의 역사'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퀴스타브 쿠르베는 '세상의 기원'이라는 작품에서 당시 사회가 허용하던 표현의 경계를 넘어섰다. 안드레 세라노는 예수상을 오줌에 담은 사진 작품 '오줌 예수'를 통해 종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뱅크시는 경매장에서 작품이 낙찰되는 순간 작품 일부를 파쇄해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단 이 작가는 중요한 것이 충격 그 자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양식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새로운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가치관, 생각, 사유를 들고 나왔을 때 새로운 것으로 간주될 수 있어요. 스캔들 자체가 미술이 된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이보름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PADO 광화문클럽'에서 '현대 미술-도발과 스캔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PADO/사진=PADO
이보름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PADO 광화문클럽'에서 '현대 미술-도발과 스캔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PADO/사진=PADO

이 관점에서 보면 왜 현대미술에서 철학이 중요한지도 분명해진다. 사진보다 사실적으로 그리는 능력이나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만으로는 더 이상 미술 작품을 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한국 미술이 아직 세계인들에게 소구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이런 문제의식은 한국 미술이 서구 현대 미술을 받아들여 온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도 이어진다고 이 작가는 설명했다. 작품에 담긴 생각이 국경을 넘어 공감을 얻으려면 그 배경이 되는 철학과 서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추상 미술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런 철학적 뒷배경 없이 형식만 들어왔어요. 그 추상 미술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맥락이 있는데 우리는 갈라진 것, 섞어 붙인 것처럼 형식만 들어온 거죠. (우리 미술이 세계에서 인정받으려면) 우리가 우리 그림을 사랑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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