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쇼크에도 거뜬…풍력으로 전기료 잡고 제조업 살린 스페인[르포]

중동발 쇼크에도 거뜬…풍력으로 전기료 잡고 제조업 살린 스페인[르포]

빌바오(스페인)=김지현 기자
2026.10.12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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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 중심 도시 빌바오에 위치한 바스크 무역투자청에서 이란츄 아옌데 페르난데스 데 에리베 바스크 에너지전환 차관(오른쪽)과 미켈 아문다라인 레이바르 바스크 에너지청장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김지현 기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 중심 도시 빌바오에 위치한 바스크 무역투자청에서 이란츄 아옌데 페르난데스 데 에리베 바스크 에너지전환 차관(오른쪽)과 미켈 아문다라인 레이바르 바스크 에너지청장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김지현 기자

"이베리아 지역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우선시하고 있으며, 이는 전기요금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 빌바오에서 만난 이란츄 아옌데 페르난데스 데 에리베 바스크주 에너지전환 차관은 중동 사태에도 스페인·포르투갈이 에너지 가격 충격을 덜 받은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에너지 자립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만의 에너지를 확보하면 더 나은 산업 전략을 수립할 수 있고, 국가 전체의 복지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중동 사태가 불거진 지난 3월 스페인의 평균 전력 가격은 1㎿h(메가와트시)당 42유로였다. 가스 의존도가 높은 이탈리아(143유로)의 3분의 1 미만이다. 연료비가 '제로(0)'인 풍력과 태양광을 중심으로 발전설비를 확충해온 결과다. 스페인의 풍력·태양광 발전량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7% 늘었다.

풍력·태양광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 가격 급등의 충격을 줄이는 한편 산업 성장의 기회가 됐다. 특히 바스크주에서는 조선·철강 등 기존 제조업의 기술이 풍력산업으로 확장되며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 바스크주에 위치한 빌바오항에 컨테이너 박스들이 쌓여 있다 /사진=김지현 기자
지난 2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 바스크주에 위치한 빌바오항에 컨테이너 박스들이 쌓여 있다 /사진=김지현 기자

이 변화의 단면은 빌바오항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일 찾은 부두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 블레이드와 타워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욘 아나사가스티 빌바오항 사업개발·복합운송 총괄은 "지멘스가메사나 베스타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각종 부품을 이곳에 보관한 뒤 세계 각지로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구 전체 면적의 38%가 풍력산업에 활용된다.

조세·재정 분야에서 폭넓은 자치권을 가진 바스크주는 일찍부터 유럽의 주요 풍력산업 거점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바스크주에는 풍력 관련 기업 150여곳이 모여 있고 종사자는 약 5100명에 달한다. 블레이드를 제외한 모든 풍력 기자재를 지역 내에서 생산할 수 있을 만큼 공급망도 촘촘하다. 항구를 중심으로 생산과 물류, 수출이 맞물린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처음부터 풍력이 주력 산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철강산업이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으로 쇠락하면서 기업들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기존에 보유한 용접·단조·금속가공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풍력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

바스크주 풍력산업 개요1/그래픽=김현정
바스크주 풍력산업 개요1/그래픽=김현정

1969년 설립된 글루알 그룹이 대표적이다. 수력발전용 유압 기술을 주력으로 하던 이 회사는 1990년대 초 풍력터빈용 유압 시스템으로 사업을 넓혔다. 지난 1일 만난 알라즈네 사발레타 대표는 "유압 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력에서 풍력으로 전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며 "풍력 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환을 뒷받침한 것은 민관 협력이었다. 바스크주는 1991년 시작한 클러스터 정책을 통해 기업과 기술센터, 행정기관을 연결했다. 에너지 클러스터는 대기업과 지역 중소기업의 기술·지식 교류를 지원했고, 주정부는 기업과 연구기관의 공동 연구개발에 자금을 투입했다. 무역투자청은 해외 진출과 거래처 발굴을 도왔다.

지난 1일(현지시간) 바스크 기업 '슬링신트'의 작업자들이 풍력발전기 기자재 중 하나인 허브를 제작하고 있다/사진=김지현 기자
지난 1일(현지시간) 바스크 기업 '슬링신트'의 작업자들이 풍력발전기 기자재 중 하나인 허브를 제작하고 있다/사진=김지현 기자

지역 내 발전 수요에만 기대지 않은 점도 특징이다. 바스크는 지형 등 여건 때문에 자체 재생에너지 발전이 활발한 지역은 아니었다. 대신 스페인과 유럽의 풍력 확대를 시장으로 삼아 제조업을 키웠다. 미켈 아문다라인 레이바르 바스크주 에너지청장은 "재생에너지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선제적으로 연관 기업을 육성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바스크의 경험은 조선·철강 기반을 갖춘 한국에도 시사점을 준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력 확보를 넘어 기존 제조업의 시장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다.

다만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사업 환경이 필요하다. 베고나 디아즈 곤잘레스 이베르드롤라 해외사업 총괄은 과거 한국 진출을 검토하다 접은 배경으로 사업 일정과 규제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알라즈네 대표는 "한국은 풍력산업에 필요한 기술과 인프라를 모두 갖추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인 에너지 믹스를 구축하기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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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산업1부 김지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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