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보존과 개발사이 균형은[투데이 窓/최연구]

세계유산, 보존과 개발사이 균형은[투데이 窓/최연구]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2026.10.0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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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4구역 고층 개발, 종묘 훼손 논란
주민 권익, 도시계획 권한 중요하지만
세계유산영향평가, 균형점 찾는 계기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얼핏 보면 건물 높이와 경관을 둘러싼 갈등 같지만, 본질은 세계유산을 보존하면서 변화하는 도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종묘 세계유산 완충구역 밖에 있고, 현행 법령상 세계유산영향평가(HIA, Heritage Impact Assessment)를 강제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주장한다. 장기간 사업을 기다려온 주민의 권익과 도시계획 권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완충구역 밖이라도 대규모 고층 개발이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와 역사적 경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HIA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기간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은 종묘 주변 개발은 HIA를 거쳐야 한다면서,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전문가, 시민 등 여러 당사자가 함께 협의할 것을 강조했다.

최근 한 일간지는 오피니언을 통해 "유네스코가 종묘 경관을 지켜줄 '만능키'인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종묘 경관을 지켜야 할 이유는 '유네스코 타이틀'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적 가치에 있고, 세계유산 지위 상실 가능성을 앞세우기보다 도심 발전과의 균형을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청할 만한 지적이다. 세계유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시의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HIA를 불필요한 규제로 봐서도 안 된다. HIA의 취지는 개발을 막으려는 게 아니라 개발이 세계유산 가치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살펴보고, 더 나은 대안을 찾는 데 있다. 국가유산청도 올해 1월 간담회에서 HIA는 개발 반대나 규제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OUV를 보호하면서 상생 가능한 방안을 찾는 절차라 설명했다. 모든 주변 개발을 평가하자는 게 아니다. 사전검토에서 세계유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판단되면 본 평가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경우 행정절차를 최소화해 영향평가를 1년 안에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해외 사례는 이런 안전장치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 준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4차선 교량 건설이 문화경관의 완전성을 훼손한다는 논란 끝에 2009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됐다. 영국 리버풀 해양무역도시도 대규모 개발의 누적적 영향으로 역사도시 경관의 진정성과 완전성이 훼손됐다는 판단에 따라 2021년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다.

이런 사례를 종묘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다. "고층 건물을 지으면 세계유산에서 삭제된다"고 예단할 수도 없고, "완충구역 밖이라 문제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HIA가 더더욱 필요하다. 실제 경관이 어떻게 변하는지, 종묘의 OUV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높이나 배치를 조정하면 영향을 줄일 수 있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영향이 크다면 계획을 조정하고, 크지 않다면 사업 추진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HIA의 대상과 적용 시점, 평가 기준이 모호하면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서울시 우려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종묘 논쟁은 HIA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킬 시험대다. 앞으로 다른 세계유산 주변에서도 개발과 보존의 충돌이 반복될 수 있다. 그때마다 힘 겨루기를 할 순 없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지켜주는 만능키는 아니지만, HIA는 적어도 불가역적 개발의 영향을 미리 확인하고 합리적 대안을 찾게 해주는 안전장치는 될 수 있다. 따라서 개발 규제 수단이 아니라 보존과 개발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조정 장치로 활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존과 개발 중 양자택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를 조정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만한 절차다.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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