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 산 책이나 기념품 등을 정부 승인 없이 국내로 들여오면 형사처벌하도록 한 남북교류협력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이 사건은 헌재의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며 법원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사건이다.
헌재는 17일 진모씨가 청구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3조 제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물품을 반출하거나 반입하려는 사람에게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 물품의 품목과 거래 형태, 대금 결제 방법 등이 승인 대상이다. 승인을 받지 않고 물품을 반출하거나 반입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건의 청구인인 진씨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북한에서 구입한 서적 19점 등 물품 146점을 승인 없이 국내로 들여왔다가 이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진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재판 과정에서 관련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2022년 6월 1심 법원은 진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고 압수 물품에 대한 몰수를 명령했다. 진씨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도 기각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진씨는 항소장을 제출하고 헌재에 남북교류협력법 제13조 제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헌법상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북한과의 물품 교류를 정부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다.
헌재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남북한 사이의 물품 반입을 통일부로 일원화해 남북교류가 정책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입법 목적이라고 봤다. 승인 제도가 물품의 무분별한 반입을 막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고려했다.
헌재는 승인 제도가 모든 물품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관련 규정에 따라 여행자가 휴대할 필요가 있는 물품이나 통상적인 기념품 등은 포괄적으로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사전에 포괄적 승인 대상이 아니더라도 북한에서 돌아온 뒤 승인을 받아 물품을 반입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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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승인 반입에 형사처벌을 두는 것도 입법재량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북한을 방문한 사람이 당초 계획하지 않았던 물품을 취득하더라도 이를 승인 없이 반입하면 사후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헌재는 남북교류협력이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되도록 하는 공익이 승인받지 않은 물품을 반입하지 못해 제한되는 개인의 자유보다 작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계선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정 재판관은 여행자가 북한을 방문하던 중 예상하지 못한 물품을 취득한 경우 사전에 승인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포괄적 승인 대상인지 여부도 세관장의 판단에 따라 형사처벌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물품 자체에 국가안보나 보건상 위해가 없더라도 단순히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헌재의 심리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법원이 헌재의 심리 지연을 공개 비판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0부(수석부장판사 전보성)는 지난 6월 헌재에 헌법재판 지연 사유에 관한 의견요청서를 발송했다. 또 설명자료를 통해 헌재의 재판 지연에 문제가 있다며 이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에 대한 심사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진씨의 헌법소원에 대한 결과가 형사 사건 결론의 전제가 된다고 보고 재판을 진행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진씨 사건을 4년째 심리했다.
헌재는 법원의 의견 요청에 별도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진씨의 2심 공판기일은 오는 21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