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귀를 쫓는다며 신도를 철사로 묶고 숯불 열기를 가해 숨지게 한 무속인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주술의 효험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사망할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했다면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살인·살인방조 혐의를 받는 무속인 A씨 등 사건에서 살인죄를 무죄로 판단하고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판단하기 위해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2024년 9월 인천 부평구의 한 음식점에서 숯불을 이용해 조카인 30대 여성 B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가 식당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곁을 떠나려 하자 A씨는 B씨에게 악귀가 들렸다며 이를 퇴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친인척과 신도들을 동원해 B씨를 철제 구조물에 엎드린 상태로 묶은 뒤 복부 아래에 불붙은 숯을 놓고 약 3시간 동안 열기를 가했다. B씨는 의식을 잃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장기부전 등으로 숨졌다.
1심은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살인 또는 살인방조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2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살해의 고의와 공모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A씨의 죄명을 상해치사로 변경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상해치사 또는 상해치사방조죄를 적용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다시 판단하기 위해 돌려보냈다. 살인죄의 고의가 인정되기 위해 반드시 살해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 의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로 타인이 사망할 가능성이나 위험성을 인식하거나 예견했다면 그 인식이 확정적이지 않더라도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람을 묶어둔 채 불붙은 숯으로 장시간 열기를 가하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악귀를 퇴치하려는 의도와 피해자가 사망할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주술의 효험을 진정으로 믿었다고 하더라도 사망 위험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했다면 살인의 고의를 부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A씨 등 5명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와 순차적·암묵적 공모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의 친오빠 등 가족 2명도 위험에 처한 피해자를 구호할 의무가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다른 피고인들의 살인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방조가 성립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