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쏟아지는데 중요 숫자는 숨바꼭질…한국도 '공시 다이어트' 나설 때

공시 쏟아지는데 중요 숫자는 숨바꼭질…한국도 '공시 다이어트' 나설 때

조철희 기자
2026.09.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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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공시의 역설(종합)

[편집자주]  기업 공시가 갈수록 늘어난다. 법정공시와 수시공시는 물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IR 자료까지 투자자 앞에 정보가 넘쳐난다. 하지만 중요 투자 정보는 여러 공시에 흩어져 투자자가 직접 맞춰봐야 한다. 비슷한 정보는 여러 문서에서 반복된다. 중복 내용은 덜어내고 중요 정보의 질과 연결성을 높이는 '공시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수조원 미래손실 추정치, 법정공시 사업보고서엔 없다

시총 상위 30개사 미래 위험 재무영향 공시 분석_금액 공개 주요 사례/그래픽=임종철
시총 상위 30개사 미래 위험 재무영향 공시 분석_금액 공개 주요 사례/그래픽=임종철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개사 중 9곳이 기후변화 등 미래 위험으로 수천억~수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직접 계산해 공개하고 있지만 정작 법정공시인 사업보고서에서는 이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공시의 양은 늘었지만 투자자가 기업가치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는 여러 보고서에 흩어져 있다. 공시의 양보다 투자정보로서의 질과 연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니투데이가 7일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개사의 최신 지속가능경영보고서·통합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30곳 모두 미래 위험이 회사에 미칠 재무영향을 평가했고 29곳은 그 결과를 수치로 공개했다. 하지만 미래 위험으로 실제 얼마의 손실이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금액으로 제시한 곳은 9곳뿐이었다.

공개된 금액은 작지 않다. 현대자동차는 폭염·침수·산불 등 물리적 기후위험에 따른 연간 손실을 2030년 2200억~3000억원, 2050년 5500억~1조2200억원으로 추정했다. 하나금융지주(138,900원 ▲4,600 +3.43%)는 물리적 기후위험에 따른 충당금 증가액이 2050년 최대 3조643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1,039,000원 ▼16,000 -1.52%)는 배출권 거래제 강화에 따른 배출권 구매비용의 장기 재무영향을 404억원으로 계산했다.

문제는 이 숫자를 확인하려면 투자자가 회사 홈페이지 등을 방문해 별도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까지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 재무효과를 금액으로 공개한 9개사의 2025년 사업보고서를 대조해 봐도 9곳 모두 사업보고서에서는 같은 위험의 미래 재무효과 금액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사업보고서에 위험 관련 내용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393,000원 ▲9,500 +2.48%)는 탄소중립 목표와 기후변화 대응전략을 설명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온실가스 배출권과 관련 부채의 회계처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의 최대 1조2200억원 손실 전망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404억원 배출권 구매비용 전망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따로 찾아야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이 이미 계산해 공개한 중요한 미래 재무정보가 법정공시와 연결되지 않으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같은 회사의 같은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보고서를 오가야 하는 셈이다.

사업보고서가 통상 3월 제출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그보다 수개월 뒤 발간되는 시차도 있다. 다만 이후 산출·공개된 중요 미래 재무정보를 기존 법정공시와 연결해 투자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부족하다.

이 문제는 지속가능성 공시가 법정공시로 편입되는 2028년부터 더욱 중요해진다. 금융위원회는 2027회계연도 정보를 담는 2028년 공시부터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지속가능성 공시를 제도화할 예정이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국제 공시기준도 공시량 자체보다 지속가능성 위험이 기업의 재무상태와 실적, 현금흐름에 미칠 영향을 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지속가능성 정보와 기존 재무정보 사이의 연결성도 핵심 원칙이다.

최근 일본도 공시의 양보다 투자정보의 질과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공시체계를 손질하고 있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 4일 세계 최대 규모의 노르웨이 국부펀드 운용기관 노르웨이은행투자관리청(NBIM)과 함께 투자자 관점의 공시제도 개편 논의를 진행했다. 앞서 경제산업성은 기업의 중복 공시 부담을 줄이고 투자자에게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체개시'(一體開示·문서통합) 관련 지침을 개정했다.

김훈정 광교회계법인 회계사는 "공시는 정보의 양보다 중요한 위험이 기업가치와 재무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투자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속가능성 정보도 기존 재무정보와의 연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시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업익 1.3조 vs 3010억 적자...같은 회사 다른 공시, 헷갈리는 개미들

중요 투자정보, 어디에 담겨 있나/그래픽=이지혜
중요 투자정보, 어디에 담겨 있나/그래픽=이지혜

최근 기업이 공개하는 정보는 많아졌지만 투자자가 기업의 실적과 사업 변화를 한 흐름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숫자와 그 숫자가 나온 이유가 사업보고서와 수시공시, 실적발표자료(IR) 등에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문서마다 목적이 다른 만큼 정보가 나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정작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 사이의 연결고리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 영업이익 1.3조인데 보조금 빼면 적자…숫자 연결은 투자자 몫

7일 머니투데이가 삼성전자(270,000원 ▲14,500 +5.68%), SK하이닉스(1,783,000원 ▲136,000 +8.26%), 현대차(393,000원 ▲9,500 +2.48%), LG에너지솔루션(362,500원 ▲4,000 +1.12%), 두산에너빌리티(87,900원 ▲8,700 +10.98%), 카카오(36,550원 ▲350 +0.97%), 한화에어로스페이스(1,039,000원 ▼16,000 -1.52%) 등 대표 상장사 7곳의 주요 공시와 IR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중요 투자정보가 사업보고서와 수시공시, 실적발표자료 등에 조각처럼 흩어져 있어 기업의 실적과 사업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투자자가 이를 직접 연결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7개 상장사는 반도체·자동차·배터리·플랫폼·원전·방산 등 사업구조가 다르고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기업들이다.

기업의 연간 영업이익을 좌우할 정도의 핵심 정보도 여러 공시자료를 맞춰봐야 전체 그림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생산보조금은 지난해 영업이익의 122%에 달했고, 현대자동차의 미국 관세 영향은 영업이익의 36%에 해당하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실적과 이를 좌우한 요인, 구체적인 재무영향은 사업보고서와 거래소 공시, 실적발표자료(IR) 등에 나뉘어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월 한국거래소 공시를 통해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3461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업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이익을 구성하는 또 다른 숫자가 나온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1조6468억원이 기타영업수익에 반영됐다. 회사의 연간 실적 IR자료는 두 숫자의 관계를 한 단계 더 풀어준다. IR자료에는 북미 생산보조금을 제외한 지난해 영업손익이 3010억원 적자로 제시돼 있다.

세 숫자는 같은 회사의 같은 실적을 설명한다. 거래소 공시는 회사의 연간 영업실적을 신속하게 알리고, 사업보고서는 확정된 재무제표와 보조금의 회계 반영 내용을 담는다. IR자료는 한발 더 나아가 보조금을 제외한 실적까지 별도로 보여준다. 각각의 문서는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투자자가 회사의 실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러 자료를 오가며 숫자의 관계를 직접 연결해야 한다.

현대차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지난해 미국 관세는 회사 실적을 좌우한 핵심 변수였다. 회사의 연간 실적 IR자료에 따르면 미국 관세가 영업이익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4조11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11조4679억원의 35.8%에 해당하는 규모다. 사업보고서에서도 미국 관세를 주요 경영환경과 위험요인으로 설명하지만 실제 영업이익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하려면 IR자료까지 찾아봐야 한다.

◆ 필요한 정보는 흩어지고 비슷한 설명은 반복

국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도 '연결된 정보'(Connected Information)를 강조한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IFRS S1(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 일반요구사항)은 서로 다른 정보의 관계를 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불필요한 정보의 중복은 피하도록 요구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설명과 교차참조를 제공하고 데이터와 가정, 측정단위도 일관되게 사용하도록 한다.

문제는 정보가 여러 문서에 나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이 정보들이 △무슨 일이 있었나 △실적에 어떤 영향을 줬나 △회사는 이를 어떻게 설명하나와 같은 하나의 흐름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먼저 나온 공시와 나중에 나온 재무정보를 투자자가 쉽게 추적할 수 있는 연결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사한 정보를 반복해서 제공하는 문제도 있다. 분석 대상 7개사에서도 사업 현황이나 지배구조 등 일부 정보가 사업보고서와 기업지배구조보고서 등 여러 문서에 걸쳐 나타났다. 필요한 정보의 연결은 부족한데 유사한 설명이 여러 문서에 반복되면 투자자가 읽어야 할 정보만 늘어날 수 있다.

공시의 '분산'과 '단절'은 다르다. 정보가 목적에 따라 여러 문서에 나뉠 수는 있지만 투자자가 그 관계까지 직접 추론해야 하는 구조는 개선돼야 한다. IFRS(국제재무보고기준)재단도 공시의 연결성을 투자자가 기업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서로 다른 공시를 없애는 게 아니라 투자자가 정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다.

김훈정 광교회계법인 회계사는 "투자자들이 하나의 사건과 그에 따른 재무적 영향을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정보는 줄이고 서로 다른 공시에 있는 핵심 정보는 교차참조 등을 통해 연결하는 방향으로 공시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공시 다이어트' 시작…"중복 덜고 투자정보 연결"

해외 주요국 공시제도 어떻게 바꾸나/그래픽=김지영
해외 주요국 공시제도 어떻게 바꾸나/그래픽=김지영

일본 금융당국이 상장사의 공시를 투자자 관점에서 다시 뜯어보고 있다. 중복되는 정보는 덜어내고 투자판단에 중요한 정보는 쉽게 찾고 연결할 수 있도록 공시체계를 손질하기 위해서다. 유럽연합(EU)도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항목을 60% 이상 줄였다. 잇따르는 해외시장 공시개혁은 무게중심이 '더 많이'에서 '더 유용하게'로 옮겨가고 있다. 2028년 지속가능성 법정공시 도입을 앞둔 한국도 '공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글로벌 큰손'에 공시제도 뜯어보게 한 일본

7일 일본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은 지난 4일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글로벌(GPFG)을 운용하는 노르웨이은행투자관리청(NBIM)을 초청해 금융심의회 '디스크로저 워킹그룹' 제6차 회의를 열고, 중복되는 기업공시는 줄이면서 투자자에게 중요한 정보의 질과 연결성을 높이는 방향의 공시제도 개편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NBIM은 일본 상장사들이 공시량은 많지만 중복된 내용들이 많고 정작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구체성과 접근성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NBIM이 일본 상장사 6곳의 공시체계를 분석한 결과 기업의 투자정보가 7~17종의 문서에 나뉘어 있었고, 47개의 중복 영역이 확인됐다. 법정공시 밖에 있는 중요 정보도 32건으로 분석됐다.

일본 정부는 최근 공시체계 손질을 가속화하고 있다. 단순히 공시량을 줄이려는 것은 아니고 불필요한 군살은 빼되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밀도와 연결성을 높이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지난 5월 회사법상 사업보고·계산서류와 금융상품거래법상 유가증권보고서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체개시'(一體開示)를 기업들이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운영 가이드(FAQ)를 개정했다. 일체개시는 현행 제도에서도 가능하지만 활용을 확산해 기업의 중복 작성 부담을 줄이고 투자자에게 정보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 공시 부담은 낮추고 투자정보는 더 선명하게

EU는 공시항목 자체를 대폭 줄였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개정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을 채택하면서 의무 데이터 항목을 60% 이상, 전체 데이터 항목을 70% 이상 감축했다. 기준을 짧고 명확하게 만들면서 기업당 보고비용도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공시를 줄인다고 중요한 정보를 없애겠다는 뜻은 아니다. EU 집행위는 기업의 행정부담을 줄이면서도 고품질 공시는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가려 공시의 밀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영국도 올해 초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토대로 지속가능성 일반공시(S1)와 기후공시(S2)를 담은 영국 지속가능성 보고기준(UK SRS)을 확정했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상장사 공시를 이에 맞추는 제도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 관련 공시는 의무화하되 새롭게 도입되는 일부 공시에는 '준수 또는 설명'(Comply or Explain) 방식을 적용해 기업 부담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해외 상장사에는 본국에서 이미 적용받는 공시와의 중복을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투자자에게 재무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제공하면서 시장 간 비교 가능성을 높이되 불필요한 중복 공시는 줄이겠다는 취지다.

한국도 2028년 지속가능성 공시의 법정공시 전환을 앞두고 기존 공시체계의 정비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법정공시와 수시공시, 지속가능성 공시 등에 흩어진 중요 정보의 연결성을 높이고, 중복되는 내용은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시항목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자가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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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증권부 조철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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