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 1000만 가입자 시대] ③
증권사 현금·이전혜택 경쟁 치열…'계좌 수' 넘어 실제 투자·자산형성 질적 성장 과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1000만 계좌' 시대를 눈앞에 뒀지만 증권사들의 고객 쟁탈전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신규 가입뿐 아니라 실제 자금을 넣거나 타사 ISA를 이전하는 고객에게 더 큰 혜택을 준다. 중개형 ISA가 투자고객을 확보하고 자산을 유치하는 핵심 채널로 떠오르면서 경쟁도 '계좌 하나 더 만들기'에서 '돈 있는 계좌 데려오기'로 번지고 있다.
문제는 치열한 유치전이 ISA의 실질적인 활용으로 이어지고 있느냐다. 전체 ISA의 절반 가까이가 잔액 1만원 이하일 만큼 외형과 활용도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증권사들이 고객과 자산을 서로 끌어오는 데 마케팅 비용을 쏟는 경쟁이 실제 투자와 장기 자산형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1000만 계좌'라는 외형적 성장의 의미도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은 중개형 ISA 신규 가입과 순입금, 타사 이전, 실제 거래 등에 현금과 상품권 등 각종 혜택을 내걸고 있다.
일례로 키움증권은 오는 30일까지 신규·이전·만기 재가입 고객에 현금 1만5000원을 지급하고, 순입금과 타사 이전 등에 최대 500만원을 내건 이벤트를 진행한다. 단순 계좌 개설보다 실제 자금을 넣거나 다른 금융회사에서 ISA를 옮겨오는 고객에 혜택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증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진 배경에는 중개형 ISA의 급성장이 있다. 2021년 도입된 중개형에서는 투자자가 국내 상장주식과 채권, 펀드 등을 직접 선택해 투자할 수 있다. 이전에는 신탁형과 일임형만 있어 ISA를 통한 국내 상장주식 직접투자는 불가능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중개형 도입 전인 2020년 말 194만명이던 전체 ISA 가입자는 올해 2월 말 848만명으로 4.4배 늘었다. 가입금액은 같은 기간 6조원에서 59조원으로 약 10배 증가했다. 중개형 가입금액만 41조7000억원으로 전체의 70%를 웃돈다.
ISA에 담기는 자산도 달라졌다. 전체 자산에서 예·적금 등의 비중은 2024년 말 47.8%에서 올해 2월 말 29.1%로 낮아졌다. 국내 주식·펀드 등은 같은 기간 28.3%에서 43.4%로 높아졌다. ISA의 무게중심이 저축에서 투자로 빠르게 이동한 셈이다.
특히 해외투자 열풍도 ISA 안으로 들어왔다. 금융투자협회가 ISA 잔고 상위 5개 증권사를 집계한 결과 지난 6월 말 중개형 ISA 보유금액 상위 20개 종목 가운데 ETF(상장지수펀드)가 15개였고, 이 중 9개는 미국시장을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이었다. TIGER 미국S&P500이 전체 3위, KODEX 미국나스닥1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이 각각 4·5위를 차지했다.
현행 ISA에서는 미국 주식이나 미국 증시에 상장된 ETF에 직접 투자할 수 없다.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상장된 미국시장 ETF를 통해 해외투자 수요를 충족하고 있는 셈이다. 중개형 도입 이후 ISA의 성격이 저축에서 투자로 바뀐 데 이어 투자자의 관심도 국내 자산을 넘어 해외시장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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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는 전 금융회사를 통틀어 1인 1계좌만 가입할 수 있다. 증권사가 중개형 ISA 고객을 확보하면 주식·ETF·채권 등을 거래하는 투자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할 접점이 생긴다. 증권사들이 신규 가입을 넘어 순입금과 타사 이전 경쟁에 나서는 것도 계좌 수뿐 아니라 자사 ISA에 실제 투자자산을 유치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증권사 간 경쟁은 중개형 ISA 시장의 성장을 촉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투자 편의성과 상품, 서비스 경쟁이 벌어지면서 중개형 ISA는 개인투자자의 주요 투자계좌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시장의 외형적 성장과 실제 활용도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증권사들이 고객과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계좌 수 증가만으로 ISA 시장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특히 타사 이전 경쟁은 새로운 투자자금이 ISA 시장으로 들어오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존 ISA 자산이 금융회사 사이에서 이동하는 데 그친다면 개별 증권사에는 고객과 자산을 확보하는 성과지만 ISA 시장 전체의 자산형성 규모를 키우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투자시장의 변화에 비해 제도가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ISA는 계좌에 자금을 납입하고 운용해야 세제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지만 가입 이후 지속적인 납입과 장기투자를 유도할 장치는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서학개미 열풍으로 해외투자 수요가 커졌지만 ISA에서는 여전히 해외주식과 해외 상장 ETF에 직접 투자할 수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도 ISA 확대 과정에서 국내 상장주식·펀드 등에 대한 장기투자 유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세제혜택 확대와 함께 장기·적립식 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한국 ISA처럼 개인의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세제혜택 계좌인 일본 개인저축계좌(NISA)는 2024년 제도를 개편해 장기 적립투자를 위한 적립형과 개별 주식 등에 투자하는 성장형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비과세 기간도 영구화했다. 영국도 하나의 납입한도 안에서 여러 유형의 ISA를 활용할 수 있도록 운용하고 있다.
계좌 수 확대를 넘어 달라진 투자 수요를 반영하고 실제 자금 유입과 장기투자로 이어지는 '질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ISA의 다음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