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터지면 다 물어줘야"…제재 공포에 증권사 A3급 손 뗀다

"한 번 터지면 다 물어줘야"…제재 공포에 증권사 A3급 손 뗀다

방윤영 기자, 조철희 기자
입력 2026.11.05 17:11 드롭다운 아이콘 수정 2026.11.0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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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급 신용 잔혹사]②증권사, 홈플러스·중앙그룹 사태 이후 A3급 비우량물 대폭 축소
LIG·삼부토건·동양그룹 사태 등 때마다 기업조달 창구 막히는 사례 반복
금융당국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에 리스크 더 커져…"명확한 기준 제시해야"

[편집자주]  기업 한 곳의 신용사건이 같은 신용등급의 다른 기업들까지 흔들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A3급 기업어음과 전단채 발행잔액은 급감했지만 최우량 A1급은 증가했다. 신용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판매사의 금융당국 검사·제재 부담이 커지면서 정상기업의 돈줄까지 마르고 있다. 투자자 보호와 기업 자금조달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했다.
CP 신용등급 보유 기업 중 A3급 이하 비중/그래픽=이지혜
CP 신용등급 보유 기업 중 A3급 이하 비중/그래픽=이지혜

과거 LIG건설·삼부토건 사태, 동양그룹 사태 등 대형 신용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와 무관한 기업의 회사채·CP(기업어음)까지 투자를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의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까지 겹쳐 증권사들이 비우량물 취급을 줄이는 추세다. 홈플러스·중앙그룹 사태 이후 불완전판매 등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위험이 커지면서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사실상 막혀 애꿎은 기업만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이날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열고 홈플러스 ABSTB(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판매 증권사들의 제재 수위를 논의했다. 조만간 결론을 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부터 홈플러스 전단채 발행 주관사이자 판매사인 신영증권을 비롯해 하나증권, 현대차증권(7,050원 0%) 등에 대해 검사를 벌인 뒤 지난 9월부터 제재심을 열고 본격적인 제재 절차에 나섰다.

업계에선 금감원의 금융소비자 보호 기조가 강화되면서 금융당국의 검사·제재 부담이 커졌다고 토로한다. 금감원은 지난 7월 중앙그룹 회사채 불완전판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발행 주관사와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199,700원 0%), 한양증권(18,830원 ▲180 +0.97%) 등을 상대로 검사에 착수했다. 지난 6월 이찬진 금감원장이 "투자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한 일"이라며 "부도 직전까지도 회사채를 발행해 인수하고 개인 투자자에게 리테일 판매가 된 것 같다"고 언급한 뒤다.

금감원은 증권사가 재무 악화 위험을 충분히 확인하고도 회사채를 발행했는지, 신용등급이 낮아 위험도가 높았던 채권인 만큼 투자자에게 관련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고 투자자 성향에 맞게 안내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분위기 변화는 단순히 '증권사 때리기'가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자금조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금감원 제재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홈플러스·중앙그룹 사태 이후 증권사들이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우량물 취급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교적 재무상태가 건전한 기업들까지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CP는 기업이 단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융통어음으로 신용등급은 A1·A2·A3·B·C·D 순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A3급 이상이 투자적격 등급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CP 신용등급을 보유한 기업 366개사 중 상대적으로 비우량 등급인 A3급 이하 기업은 70개사로 전체의 19%에 이른다. A3+급에는 두산(719,000원 ▼152,000 -17.45%)·코오롱글로벌(8,560원 ▲50 +0.59%)·동화기업(5,590원 ▼340 -5.73%)·여천NCC 등이, A3급에는 이랜드월드·동부건설(7,470원 ▼10 -0.13%)·쌍용건설·효성화학 등이 포함돼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와 중앙그룹 사태 이후 금융당국 제재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증권사들이 A3급 비우량물 취급을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며 "홈플러스 등과 달리 재무상태가 좋은데도 A3급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등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월1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대강당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성과 대국민 보고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월1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대강당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성과 대국민 보고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

이 같은 사례는 과거에도 되풀이됐다. 2011년 LIG건설·삼부토건 사태로 건설사 CP 발행이 급감했다. LIG건설·삼부토건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 CP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면서 건설사 CP 전체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2011년 1분기 건설사 CP 발행액은 약 1조3000억원으로 월평균 4000억원 수준이었으나 LIG건설·삼부토건 사태 이후 4월 중순까지는 700억원에 그쳤다. 신용등급 A3+ 이하 비우량 건설사의 CP 신규 발행도 어려워졌다. LIG건설·삼부토건처럼 A급 이하인 건설사 가운데는 회사채·CP 발행을 추진하다 중단한 곳도 나왔다.

2년 뒤인 2013년 동양그룹 사태도 마찬가지다. 동양그룹이 부도 위험을 숨기고 회사채와 CP를 대규모로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사건이다. 이후 회사채 투자심리 전반이 얼어붙으면서 AA급 이상 높은 신용등급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 등 일부만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책금융 지원과 함께 증권사의 상품 취급을 위축시키는 감독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발행기업의 신용위험에 따른 손실과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증권사가 적절한 신용심사와 설명의무를 이행했는지에 따라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해져야 신용사건 발생 가능성만을 이유로 상품 취급을 일률적으로 중단하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소비자 보호 추세는 이해하지만 증권사 입장에서는 '한 번 터지면 다 물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나쁜 증권사로 낙인찍힌다는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며 "결국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는 만큼 금융당국에서 불완전판매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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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희 기자

머니투데이 증권부 조철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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