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아이폰에게 한방 맞은 이유

[기자수첩]아이폰에게 한방 맞은 이유

성연광 기자
2010.06.20 15:50

"창의성 부재가 직원들만의 탓은 아니죠."

국내 IT 대기업 직원의 한 마디에서 여러 가지가 느껴진다. 우선 스마트폰과 태플릿PC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애플의 위세 앞에 한 없이 작아져 있는 국내 기업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시가총액을 뛰어 넘을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애플의 부상에 IT 강국인 한국의 대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3D TV를 비롯한 평판TV 등에선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로 국내기업들이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최근 유망 시장으로 떠오른 '스마트 기기'분야에선 애플의 뒤를 따르는 양상이다.

삼성과 LG가 이미 오래전부터 '창조'와 '혁신'을 위한 조직 문화 만들기에 나서왔으나 '애플 쇼크'이후 과연 이 같은 노력이 제대로 이뤄져왔었던 것인가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조직 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진 것도 애플과의 경쟁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방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원인 규명이 올바로 돼야 한다. 일부 직원들은 '상상력 부재'가 과연 직원들의 조직문화 때문이었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모 대기업 직원은 "아이폰, 아이패드 등장 이전부터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유사한 사업 아이템들이 여러 차례 실무진에서 검토돼왔던 것으로 안다"며 "아이디어 자체보다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제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경영진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췄더라도 실패에 따른 책임 묻기가 우선시되는 의사결정구조에서는 혁신제품이 세상에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도 했다. 열린 의사결정구조, 실패를 용인하고 실패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유연성이 혁신을 만들어낸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비단 기업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 아이폰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유튜브, 페이스북 등 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콘텐츠들에 가치가 부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이나 한 기업이 만들어낼 수 없는 참여형 콘텐츠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이외에도 이미 위키피디아에서 성공을 거뒀으며 트위터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열린 콘텐츠 문화가 결합돼 '참여형 콘텐츠 디바이스'라 할 수 있는 아이폰을 탄생시켰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서도 벌써부터 참여형 콘텐츠들이 수없이 시도돼왔고 일부 대성공을 거둔 바도 있다. 다만 이 같은 흐름이 이토록 빠르게 전통 제조업의 승부처로 부상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폰 쇼크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이 이미 모두 갖고 있는 IT 제조 기술과 참여형 콘텐츠 사이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사건'이라할 수도 있다.

이미 애플을 능가하는 혁신제품이 나올 수 있는 기술적 기반, 콘텐츠를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얻어맞은 이유를 다시 곱씹어 봐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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