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가 상향조정 '위험한 리픽싱'

전환가 상향조정 '위험한 리픽싱'

현상경 기자
2010.10.18 07:03

[thebell note]상법상 자본 충실 원칙 위배 가능성

더벨|이 기사는 10월14일(08:59) 머니투데이가 만든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혹은 전환/상환 우선주는 무조건 제3자에게 지분을 배정하는 보통주보다 장점이 많다. 나중에 주가(혹은 기업가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그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비책의 핵심은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전환가도 따라 내릴 수 있는 이른바 '전환가 조정항목'(Refixing Option Clause)이다.

그런데 최근 바이아웃과 그로스캐피털 투자를 막론하고 자금은 많이 풀렸는데 투자처는 줄면서 시장 일각에서 묘한 리픽싱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법률상 정해진 리픽싱 조항을 역이용, 주가가 오르면 전환가격도 따라 올리는 경우다.

상황은 이렇다.

리픽싱이란 게 태생적으로 기존 주주에게는 불리하고 CB나 BW를 사는 신규 투자자에게만 유리한 조항이다. CB나 BW는 예상주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얻도록 해야 돈이 되는데, 주가가 크게 떨어져버리면 이들은 별 볼일 없는 채권으로 전락한다. 이를 막으려고 주가가 떨어지면 최초 전환가의 70%까지는 전환가격도 같이 낮출 수 있도록 해준 게 리픽싱이다.

어찌보면 왜곡된 형태의 주식 할인발행 도구인 셈. 이 리픽싱 조항을 강력하게 제시한 기업이라면 일반적인 증자나 사채 발행으로는 자금을 유치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처한 기업이란 의미도 된다. 이러다보니 코스닥 상장기업의 CB, BW를 통한 온갖 '게이트'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할 때는 이 리픽싱 옵션 자체의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거꾸로 너무나 성장성이 좋아 여러 기관투자자로부터 "제발 우리 자금 좀 갖다 쓰시오"라는 소리를 듣는 기업이 있다고 치자. 이 기업 입장으로 보면 투자자만 좋으라는 전환가 하향조정은 불만사항이다. 이 기업의 주가가 예상보다 크게 오른다면 투자자는 '대박'이 나겠지만 한때 자금이 아쉬워 CB, BW를 찍은 기업으로서는 억울함을 곱씹어야 한다.

그래서 거꾸로 얘기할 지도 모른다. "주가가 내리면 전환가를 내려줄테니, 거꾸로 주가가 일정 정도 이상 오르면 전환가도 올립시다."라고. 이른바 투자자만 유리할 게 아니라 피투자기업도 유리하게 해줘야 '공평'하다는 논리다.

상식적으로 못받아들일 얘기도 아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좋은 기업을 앞두고 서로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생기면 역으로 기관투자자가 기업에게 이런 제안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사모투자회사(PEF)가 투자실적을 올리기 위해 특정기업을 상대로 상향조정을 제안했다는 얘기도 시장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 못한 위법성이 발생할 수 있다. 바로 상법상 규정하고 있는 '자본충실의 원칙'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A기업이 10억원어치 CB를 전환가 1만원(액면가 5000원)에 발행했다고 하자. 원래 합의대로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발행될 신주는 10만주. 액면가로 계산되는 '자본금'은 5억원이 추가되며 나머지 5억원은 자본잉여금으로 처리된다.

행여 법률상 정해진 리픽싱 조항이 적용, 전환가가 5000원으로 떨어졌다면 20만주의 신주가 발행되고 추가될 자본금은 10억원으로 늘어난다. 한마디로 리픽싱이 적용돼도 CB발행시부터 예상됐던 자본금 증가분이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CB가 법에도 없는 '상향 리픽싱'을 적용, 전환가가 2만원으로 오른다면? 전환될 주식은 2만5000주로 줄어든다. 최소 5억원은 늘어야 할 자본금이 단 2억5000만원 늘어나는데 그친다. 예상보다 자본금이 되레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리픽싱 상향조건은 과거 벤처기업 투자붐이 한창일 때 간혹 등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벤처캐피털이나 창업투자회사들이 법무법인을 통해 법률적 검토를 진행, 이 같은 '위법성'을 지적받고 손을 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웬만해서는 상향 리픽싱을 도입할 만큼 주가가 크게 오르는 상황이 닥치지는 않지만, 정말 이런 상황이 올 경우 위법한 투자로서 계약의 유효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어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기업의 기존 오너와 CB를 인수한 투자자들이 법원을 찾아가 주식으로 전환을 해주니, 못해주느니 법정공방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다소 씁쓸한 점은 굳이 이런 위법성 우려를 감내하고서까지도 무리하게 투자를 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하긴 따져보면 어차피 사모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상장사만 아니라면 책임은 당사자들이 지면 그만인 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투자의 기록은 오롯이 남아 해당회사의 평판을 두고두고 갉아 먹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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