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의 전협력사 엔텍 대표와 이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호텔신라 객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 5일에는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발파를 반대하는 사람들 수백 명이 삼성본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런 뉴스를 접하는 상당수 사람은 그래도 강자인 삼성보다 약자인 농성자편을 들기 십상이다. 사실관계보다 약자에게 우호적인 '측은지심'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다)의 기초가 되는 사단(四端) 중 가장 앞서는 게 측은지심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돕는 마음이나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강자와 약자의 대립구도'에서 군중은 약자의 편에 선다. 인간의 근원적인 선함과 오랜 학습을 통해 익혀온 '권선징악' 스토리의 각인 때문이기도 하다. 권선징악 소설은 '선하면서 약한' 사람이 결국 '악하면서 강한' 자를 이기는 프레임이다. 하지만 일부 맞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에서 그 명제가 반드시 '참'(眞)은 아니다.
'맹자'의 사단 중에는 측은지심과 함께 '수오지심'(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사양지심'(사양할 줄 아는 마음) 외에도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시비지심'도 있다.
인간사에선 측은지심과 시비지심 간에 갈등이 늘 존재한다. 측은지심은 '따뜻함'을, 시비지심은 '냉정함'의 색을 갖고 있다. '정서법'이 더 강한 힘을 가져 법보다 정에 기대는 한국적 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약자가 그르고, 강자가 옳을 경우' 여론은 어때야 할까. 옳고 그름을 가려 측은지심을 잠시 접어둬야 할 때도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늘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주변에는 각종 1인 시위와 기습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 호텔신라 객실을 점거한 엔텍 외에도 '재개발 세입자 항의' '구럼비 발파 반대 단체 시위' '중동학원 지원 촉구 시위' 등이 그것이다.
삼성을 찾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에는 측은지심이 있다. '크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아픔을 호소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주장이 바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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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비리로 거래가 끊긴 엔텍이 삼성전자에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나 시행사인 재개발조합으로부터 보상받지 못한 세입자가 보상책임이 없는 시공사인 삼성물산을 찾아와 보상하라는 것은 측은지심에 앞서 시비지심으로 따져볼 일이다.
구럼비 바위 발파공사도 마찬가지다. 발주자인 해군이 공사의 중지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권자다. 공사 수주업체는 시행자의 요구에 따르는 '을'에 불과하다. 정부 발주를 기업에 아무리 중지하라고 해도 기업에는 선택의 길이 별로 없다.
삼성이 지원을 중단한 중동학원 문제도 비슷하다.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된 중동중·고등학교에 대해 삼성은 2016년까지 필요한 경비를 일괄 지급하고 지난해말 손을 뗐다. 여기에 추가로 더 지원해달라는 시위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봐야 할까.
지난해 한 소비자가 '나는 애니콜 폭발 피해자다'라며 삼성본관 앞에서 1인피켓시위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여론은 그를 '거대 삼성에 맞서는' 연약한 피해자라며 측은지심을 갖고 그의 '의로운(?)' 싸움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 배터리를 폭발시킨 후 삼성에 돈을 요구한 '블랙컨슈머'로 밝혀졌다. 측은지심만 갖고는 진실을 가려낼 수 없다. 인간에게 시비지심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