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日 D램의 종언과 역사의 수레바퀴

[광화문]日 D램의 종언과 역사의 수레바퀴

오동희 산업1부 부장(재계팀장)
2012.05.08 09:07

'일본 D램 사업의 종언.'

니혼게이자이신문(일본경제신문) 등 일본 내 언론들의 7일자 헤드라인이다. 전자산업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1980년대 전세계 D램 시장의 80%를 차지하던 일본 업체 중 마지막 희망으로 남아있던 엘피다가 미국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의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

D램 시장의 역사는 미국에서 시작됐고, 이를 꽃피우는 자리에는 일본이 있었으며, 그 열매를 맺는 곳에는 한국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엘피다(NEC+히타치)의 역사의 수레바퀴는 서로 여러 갈래로 얽혀서 지나갔다. 그 자리에는 승자와 패자가 늘 존재해왔다.

한국 수출 1위 상품인 D램은 1970년 미국 인텔이 메모리의 산업표준인 1103 D램을 처음 개발하면서 시작됐고, IBM이 1970년대 후반 개인용 PC를 내놓으면서 성장엔진을 달았다. 이 시기 일본 기업들은 미국으로부터 특허를 사들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고 1984년경에는 NEC 등 7개 일본 기업이 전세계 시장의 80%를 점령하며 'D램 원조국' 미국을 압박했다.

이 시기(1985년 미일 반도체협정)의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전쟁'이 1983년 D램 사업 진출을 선언한 삼성과 현대전자 등 한국 D램 산업의 도약을 이끈 촉매제라고 풀이하고 있다.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역사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외부 의존적 성공 스토리다. 우리에게도 저력은 있었다.

1970년대 일본이 D램 시장에 진출할 때 국내에선 1974년 한국 최초의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가 설립됐고, VLSI(초고집적회로) 개발을 위한 꿈이 영글고 있었다. 이 꿈은 한국반도체의 위기로 당시 모토로라에서 한국으로 왔던 강기동 박사를 비롯한 테리 마틴 등 미국 내 엔지니어들이 1976년경 한국을 떠나면서 잠시 꿈을 접어야 했다.

테리 마틴 등 엔지니어들은 1978년 미국 아이다호 근처에 새로 설립된 반도체 회사의 부사장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가 지난 4일 엘피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미국 유일의 D램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다. 설립 당시 마이크론 엔지니어들의 중심축이 '한국반도체' 출신이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후 시계용 칩을 개발해 잠깐 호황을 누리다가 고전을 겪었고, 1983년 '도쿄선언'으로 D램 산업에 진출한다며 손을 뻗었던 곳도 마이크론이다.

삼성전자 D램 사업이 '한국반도체'에서 10년을 돌아 다시 1983년 마이크론에서 설계도를 배우는 공부부터 한 것은 아이러니다. 1983년 당시 마이크론은 NEC 등 일본 D램 업체들의 공세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금이 필요했고, 삼성이 이들에게 기술이전료를 주고 이들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삼성과 NEC는 1970년 TV용 브라운관 합작사로 삼성NEC(현 삼성SDI)를 설립했다. 1980년대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D램 시장 진출을 위해 친분이 있던 NEC 회장에게 반도체 라인 투어를 요청했으나 그는 TV 라인은 보여줄 수 있지만 반도체 라인은 안된다며 거절해 수모(?)를 준 일화가 전해진다.

호암은 이때 이를 악물고 반드시 반도체로 일본을 이기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당시 강진구 사장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일본과 미국에서 기술을 배운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생존해 현재 전세계 D램 산업을 이끌고 있다.

NEC의 엘피다는 무너졌고, 수모를 겪었던 삼성전자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디로 굴러갈지 모른다. 일본 언론들은 엘피다의 쇠락은 혁신의 시계바늘이 멈췄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가 새겨들을 얘기이기도 하다.

일본 D램 산업의 종언은 D램에서 CPU로 진화한 인텔도 배우지 못했고, 생산성 혁신을 통한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도 배우지 못한 채 기술 중심의 엘리트주의에 빠진 일본의 실패라는 분석도 있다.

또 공격적 투자를 주저한 일본의 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 D램의 종언은 어떤 이유든 영원한 1위는 없다는 점을 가르쳐주는 교훈임에는 분명하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