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집행유예를 선고할 아무런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만큼 반드시 실형이 선고돼야 한다" 검찰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하며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실형을 주장했다.
최 회장은 이어지는 최후진술에서 "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 재판을 받고 여론으로부터 질타를 당하는 것이 괴로웠다"고 답했다.
#11월26일 서울고등법원 312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8월16일 법정 구속된 이후 100일에 가까운 구치소 수감생활에 심신이 지친 듯 항소심 공판이 진행되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목발을 짚고 나타난 김 회장은 당뇨로 인해 몸이 많이 불어 있는 상태였다.
#11월27일 서울고등법원 303호
검찰은 휠체어에 탄 채 재판을 받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서 징역 7년에 벌금 70억원을, 간이침대에 누워 의료진과 함께 출석한 이 전 회장의 모친 이선애 전 상무에게 징역 5년에 벌금 70억원을 각각 구형했다. 이 전 회장 측은 "목숨만은 구해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지난 일주일새 열렸던 국내 대기업 총수들의 재판 풍경이다. 이들은 모두 기업인 재판의 단골 메뉴인 횡령·배임 혐의로 법정에 섰다. '재벌용 판결'이라 불리며 비판을 받았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공식이 깨지면서 재판정에 선 총수들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사색이 돼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부터 불어온 '경제민주화' 바람이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게 기업과 기업인들의 시각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법원의 판결이 '바람'을 탄다는 의심을 받는 것은 '배임죄'의 애매한 판단 기준 때문이다.
형법상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배임 혐의가 쉽게 성립된다. 기업인의 행위가 '경영상의 판단'인지 '위법행위'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도 없다. 배임죄가 타 형사범죄에 비해 무죄 선고율이 5배나 높다는 통계는 배임죄의 '모호성'을 반증한다.
'재벌 특혜'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만큼, 다른 한편에서는 '왜 우리만···'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재벌 특혜'를 없애야 한다는 당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법정에 선 총수 역시 '재벌 기업인'이기 이전에 일반인과 똑같은 ' 피고인'이다. 구체적이고도 합리적인 배임죄 판단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평등한 법적용'을 원하는 기업인들의 억울함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