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품은 제조원가, 품질,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영화는 이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가 관람료가 같고 흥행대작과 며칠만에 간판을 내리는 영화가 관람료가 같다.

그렇다고 극장들이 담합하는 것도 아니고 할 이유도 없다. 영화에 이런 비정상적인 가격결정이 이루어지는 이유에 대해 찾아보아도 경제학 책에는 마땅한 답이 없다. 어쨌든, 디즈니가 제작한 CG애니메이션 라푼젤(Tangled)은 초당 제작비가 4600만원이지만 관람료는 1만원을 넘지 않는다.
즉 영화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만 잘하면 가격대비 엄청난 효용을 누릴 수 있는 상품이다. 비싼 오페라와 음악회 문턱이 높은 서민들에게 영화처럼 큰 위안을 주는 문화상품이 없다.
미국 영화산업의 본거지인 헐리우드 뒷산을 넘어가면 버뱅크(Burbank)라는 지역이 나온다. 인구는 약 10만. 우리 나라 인천시의 자매 도시다. ‘세계의 미디어 수도’로 불리며 월트디즈니, 워너브라더즈, 워너뮤직, 니켈오디온 등 유수의 미디어 회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도시는 원래 록히드, 노드롭 같은 방위산업체들의 발상지였으나 1920년대 이후 컬럼비아를 필두로 영화사들이 진출하면서 미디어산업이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 로스엔젤레스 남부에 있는 디즈니랜드도 원래는 버뱅크에 조성될 계획이었다. 버뱅크와, 유니버설이 있는 인근의 유니버설시티, 그리고 헐리우드를 포함하는 로스엔젤레스 전역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창의적인 인재들이 모여들어 영화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NBC, ABC를 포함한 미국 방송사들의 서부지역 본거지이기도 하다. 미디어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이 지역의 정치적인 의미도 적지 않다. 로스엔젤레스타임즈는 미국에서 4위의 발행부수를 자랑한다.
이 지역은 무수히 많은 창업과 창업투자, M&A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제작에는 대규모의 물적, 인적 자원이 투입된다. 좋은 시나리오와 천재적인 감독, 배우의 연기만으로는 제작과 흥행에 성공할 수 없다. 첨단기술이 있어도 금융을 포함한 자금지원과 마케팅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업이 성공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 간 영화는 캐러비안의 해적 제3편이다. 제리브룩하이머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디즈니가 배급한 것인데 약 3억 달러가 투입되었다. 이 영화의 수입은 약9억 7000만 달러였으므로 성공작이지만 어쨌든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3억 달러라는 거액이 제작기간 동안 자기자본 비용과 차입금 이자 부담을 감내해 주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영화산업이 성공적으로 발전하려면 이렇게 대규모의 투자와 금융이 가능한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한다. 동시에, 영화의 흥행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는 모험이다. 영화산업은 높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자본을 유치할 수 있어야 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긴요하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입주한 스튜디오의 성공에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버뱅크는 그 모든 요소의 복합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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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가 외국영화보다 점유율이 높아지고 지금 수준으로라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부터 멀티플렉스가 늘어나고 산업자본이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들의 참여도 많이 늘어났다. 2000년대 후반의 침체기를 초래한 과당경쟁이 지양되고 리스크 관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국내 영화산업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세계시장 점유율 2%라는 수치는 지금은 '한계'지만 달리 보면 엄청난 '성장 가능성'이다. 결국 국제화에 길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과 같다. 최근 개봉된 국내 영화들은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